2008년 05월 06일
언니 몰래 얼음 딸기

“옷에 떨어뜨렸을 때, 가장 예쁜 색 물을 들이는 과일이 뭔 줄 알어?”
좀 난데없는 질문이긴 하다. 새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와이셔츠나 오늘 처음 꺼내 입은 아이보리색 마 원피스에, 과일즙이 ‘똑’ 떨어져 색이 번지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정말 생각만으로도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하물며 옷을 물들이는 색의 예쁘고 안예쁨을 논하자 하다니. 누군가에게 정말로 이 질문을 건넨다면, 당신은 ‘정신이 뻥 나갔거나’, ‘생각인 남보다 37센티미터쯤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답을 알려주고 싶다. 여러 불미스런 경험과 비경제적인 실험을 토대로, 옷에 묻었을 때 가장 고운 색을 내는 것이 ‘딸기’라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 가시광선을 뿜는 과일은 많다. 딸기 말고 체리와 앵두도 있고, 토마토에 석류, 그리고 수박도 있다. 이들 과일은, 보는 이의 취향 또는 객체의 등급에 따라 색이 더 고와보일수도 좀 탁해 보일수도 있는 빨간 색을 지녔다. 그런데 옷자락에 즙이 떨어졌을 경우 이들 색감은 보다 천차만별이 된다. 대부분 옷감이 거무죽죽해지거나 누렇게 변해 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딸기는 다르다. 옷에 묻어서도 선명하게 빨간색을 뽐낸다.
만약 섬유를 물들인 딸기 색을 본다면 “올봄 입술 화장은 체리핑크가 대세”라거나 “앵두 같은 입술”이란 표현보다, “그녀의 딸기 색 입술이 날 뒤흔들었”단 문장이 한껏 맘에 와 닿을 것이다. ‘딸기 색 입술’이라니. 정말 뇌쇄적인 수식 아닌가.
‘딸기’란, 생김새부터 낱말의 느낌까지 결코 예사롭지 않은 과일이다. 빨강몸체와 초록색 꼭지의 강렬한 보색대비는 다른 과일도 더러 그러하니 일단 차치한다하더라도, 역 원추 형태의 표면에 촘촘히 박혀있는 씨랑, 까낄까낄한 솜털까지 여타 과일에 비해 여러 희한한 요소를 지니지 않았나. 그래서일까? 이 ‘요상발랄’한 딸기는, 미술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얼음 덩어리 안에 딸기를 듬성듬성 박아 놓은 박성민의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스읍~”하고 젖은 침을 삼켰더랬다. 얼음이 전파하는 얼얼한 조건반사에, 딸기가 지닌 새콤함을 참아내지 못하고 삼킨 대량 ‘아밀라아제’였던 것이다.
아이스캡슐 속 딸기는, ‘잎새 뒤에 숨어있는’ 딸기보다 한층 도회적인 이미지를 지녔는데, 그 풍겨지는 아삭함이 가히 절정에 달한다. 만약 그림 속 딸기 하날 똑 떼어 베어 문 다면, 그것은 혀나 어금니뿐 아니라 잇몸과 턱까지 얼얼하게 마비시킬만한 강력함을 과시할 것이다. 작가는 영민하게, 촉각을 자극하는 얼음에 미각을 좌지우지하는 딸기를 접합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가공할만한 공감각적 피드백을 자아내게 한다.
희한한 생김새와 촉감을 지닌 과일, 옷자락에 떨어지면 한층 이쁜 색을 내는 과일, 보는 것 만으로 침샘을 마구 자극하는 그 이름 딸기. 바야흐로 계절 역시 ‘언니 몰래’ 딱 훔쳐 먹고 싶은 딸기의 것이다. 헉! 조심. 이 글로 딸기에 전염된 당신, 어쩌면 하루 종일 삐삐롱스타킹의 “딸기가 좋아”를 흥얼거릴지 모른다. 글 정희(자유기고가)
# by | 2008/05/06 11:47 | [art+culture]Food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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