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_food

흔들리고 사라지는 빛, <R. G. B. 칵테일>



애초에 술이란 과실나무에서 떨어진 열매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발효되는 사이에 만들어진 ‘발견품’이었다지요. 마셔보니 기분이 좋아지길래 이토록 좋은 것을 내려주신 신을 찬미하고 그를 위해 또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즐겨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겠지요.
그래도 사람, 머리 좀 쓰는 동물 아닙니까. 과일과 곡식을 발효시켜 이제는 제법 술을 만들 줄도 알게 되었지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아라비아에서 전래된 증류 기술은 중세의 화학자들이었던 연금술사들의 손을 거쳐 술의 주성분이 알코올(al‘kohol)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 알코올은 방부제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약제상의 손을 거쳐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위스키나 브랜디같은 증류주로 발전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또 필요했던 것이지요. 
오랜 세월 사람과 함께 했던 술의 역사는 칵테일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술을 다양한 기호와 취향에 맞추어 혼합해낸 것이지요.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페르시아에서도 예로부터 펀치라는 혼성음료가 있었고 이것이 스페인 사람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름 없이 만들어졌을 칵테일이 많고도 많았겠지요. 여하튼 칵테일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795년경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이주한 A. A. 페이쇼라는 약사가 달걀 노른자를 넣은 음료를 만들어 프랑스어로 코크티에(coquetier, 달걀 컵)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칵테일의 이름과 그 다채로운 모양새를 보면, 사람이 참 어떤 종류의 동물인지를 알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술과 음료를 미세한 비율과 순서로 섞어내고 거기에 장식을 더하는 데다가 각각의 완성품마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름까지 선사하지 않습니까?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부터 바에 마지막 남은 손님에게 제공하는 ‘XYZ’까지 다양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미디어 아트의 1세대를 구성하는 대표작가 중 한 명인 김해민도 새로운 칵테일 레시피를 갖고 있더군요. 그가 만든 <R.G.B. 칵테일>은 형형색색의 현란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쁜 술인 칵테일을 영상으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R. G. B.는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을 뜻하지요. 비어있는 칵테일 잔에 프로젝터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술을 담는 것입니다. 색의 삼원색은 다같이 섞여 검정이 되지만 세 가지 빛은 섞이면 사라져버린다고 하지요. 사람의 눈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 걸까요. 그 눈으로 본 것 중에서 어떤 것을 마음에 담고 어떤 것을 잊는 걸까요. 어른거리는 술잔 위로 비치는 것은 과연 내 얼굴이 맞는 걸까요. 보고픈 것, 잊고픈 것, 분명한 것, 흩어지는 것 모두 모두 털어, 오늘은 칵테일 한 잔 어떠세요? 글 황록주 경기도 미술관 큐레이터

by 아트레이드 | 2008/04/01 12:35 | [art+culture]Food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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