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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와 팝콘, 더불어 봄!



늦깎이 동장군이 슬쩍 다녀간 뒤로 마음은 벌써 봄을 달려갑니다. 그래서인지 봄을 기다리는 이 무렵의 추위는 더욱 매섭습니다. 기대치와 늘 엇나가는 까닭이지요. 행여나 앞서간 마음에 얇은 옷자락을 걸칠라치면 역시나 호되게 당하고 맙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지루한 이 겨울은 곧 가고 말겠지요.
남도에서는 벌써 매화 소식이 들립니다. 그 작은 송이송이 꽃들이 활짝 열리는 것을 생각만 해도 향내에 취하는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도 급한 걸까요. 추운 겨울에도 홀로 피는 의연함에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이 되었다지만, 제가 보기엔 왠지 멋모르고 세상에 발을 디딘 어린 아이의 서툰 걸음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매서운 바람을 저 혼자 무시하고서 발랄한 봄옷을 꺼내 입는 이 무렵의 제 모습 같기도 하지요. 그래도 그 녀석, 벌 나비 도움도 없이 튼튼히 매실을 일구어내는 것을 보면 참 기특합니다.
급한 성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실은 매화 피어난 모양새를 보면, 그 작은 어린애 입술 같은 꽃잎 안에 어쩜 그리도 많은 수술을 달고 있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녀석은 아예 수술이 꽃잎 너머까지 자라 있기도 해서 할 이야기가 많아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흰 종이와 먹만 있으면 매화가 그리고 싶었다는 조선 후기의 화가 조희룡은 하도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에 미친 사내라고 불립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흐드러진 매화는 아마도 이 팡팡 터져 나오는 듯한 개화의 재잘거림에 흥이 난 화가의 어깨에서 절로 피어났을 겁니다. 문인화 속 사군자하고는 좀 거리가 있겠지요. 그래서 조희룡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가 그의 그림을 놓고 문인의 기운이 있느니 없느니 하며 나무랐다지요.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사람들은 매화 하면, 먼저 조희룡을 떠올리는 것을요.
구성연의 <팝콘>은 어쩌면 이리도 제 마음 같은지요.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매달아 놓은 팝콘은 가차 없이 매화입니다. 고매한 취미를 가진 이들의 눈에는 대체 매화를 톡톡 벌어지는 팝콘으로 대체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좀 김새는 일이겠습니다만, 그 높은 경지는 다른 기회에 논하도록 하고, 하여간 오늘은 바로 그 재기발랄함에 마음이 팍 꽂힙니다. 팝콘, 씹으면 아삭하지요. 매화의 그윽한 향내가 고소한 팝콘 냄새와 슬쩍 뒤섞이면서 만개한 매화나무 아래서 팝콘을 먹으면, 거 참 묘한 기분이 들겠다 싶습니다. 
사실 그간 구성연이라는 작가가 사진으로 보여준 세계는 그렇게 극단을 오가는 것이었지요. 달걀 노른자 속으로 잠긴 나비의 날개, 흰 밥 위로 뒤덮인 푸른 유리 조각, 곧 사라지고 말 모래로 만든 아슬아슬한 물고기. 무엇이 견고한 세계이고 무엇이 확고한 의미인지를 되묻는 현실 너머의 이미지들은 우리가 욕망하는 그 지점에서 팝콘처럼 탁, 튀어 오르는 바로 그것을 보라 말합니다. 이것은 돈오돈수(頓悟頓修)의 경지일까요? 아니면 그저 거짓말일까요? 거짓말이라도 좋습니다. 오늘은 조희룡과 구성연이 매화나무 아래서 만난 걸요. 매화 향내가 팝콘 냄새와 더불어 봄입니다.   글 황록주 경기도 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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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레이드 | 2008/02/15 12:01 | [art+culture]Food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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