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01일
art+culture_food
밥 한 그릇

말이 식구(食口)지, 남편은 일주일에 겨우 두세 번 밥상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밥상머리보다 휴대전화에서 더 자주 만나는 사이라 우리 같은 가족에게 먹거리를 함께 하는 '식구'란 좀 낯선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간만에 저녁 시간을 맞출 수 있겠다는 연락이 오면 모처럼 부엌이 활기를 띱니다.
그런데 찌개와 찬 몇 가지 준비에 분주해지는 저와는 달리 어머님은 새 밥을 지을 채비를 먼저 하십니다. 저녁거리로 충분할 만큼 밥이 남아 있어도 간만에 먹는 집 밥인데 새 밥을 지어 줘야지, 하십니다. 그 말씀이 백 번 옳다 생각합니다. 갓 지어낸 차지면서도 포슬포슬한 밥맛이야 어디 비할 데가 있을까요. 그런 줄을 뻔히 알면서도 저는 아직 어머님의 마음을 따라가려면 한참 갈 길이 멉니다.
그런 각박함을 부러 세상살이 바쁜 탓으로 돌려봅니다. 당신도 그렇지만 나도 일하는 사람이니까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여겨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그래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새 밥을 지을 때마다 조왕신에게 한 그릇 푸짐하게 먼저 올렸던 옛 어머니들의 마음을 쫓아갈 수나 있을까요. 어머니들의 밥은, 식구들의 배를 불리고 살을 찌워 그들의 활동이 가능하게 하고 또 그 모든 것들이 다 바르고 고운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짓는 그런 밥입니다. 그리고 그 밥을 제일 먼저 부엌의 신, 조왕신에게 바친 것이었지요.
강용면의 작품 <온고지신-2000조왕>은 그 살뜰한 마음에 대한 헌사에 다름 아닙니다. 그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놋그릇을 만들어 삶에서 마주하는 자잘한 물건들을 전통의 조각과 채색법으로 제작한 나무 조각품으로 가득 채워놓은 작품이지요. 2~3년 동안이나 정성들여 말린 미송을 하나하나 속을 비워내고 조각해내는 오래된 한국의 목조각 기법을 그대로 이어가는 강용면의 작품은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흔들어대는 울림을 전합니다. 게다가 조왕께 바치는 밥그릇이라니. 부엌과 함께 생활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애잔함을 속속들이 모르고서야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런 그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정겹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슬쩍 잊고 지나게 되는 오랜 살가움이 묻어납니다. 작품 속에 스며있는 민화와 보자기와 단청 같은 것에서 추출해낸 모티프들은 아주 오래된 익숙함입니다. 이제는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부러 내쳐도, 불쑥 눈앞에 드러나면 따뜻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구호뿐인 전통이나 빛바랜 한국성이 아니라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향수를 자극하는 깊은 맛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역설입니다. 마음은 그저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밥솥에 그득한 밥을 두고, 식구들을 먹일 새 밥을 짓는 일이 수월한가 물으면, 대답하기가 좀 곤란합니다. 하지만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마음이 농익으면 시간을 핑계대지 않고도 뜻을 전하는 것이 가능해지리라 믿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저 나도 이만큼은 알고 있으니 그렇게 될 날도 올 거라 겸언쩍은 고백을 좀 해야겠습니다. 이 시대의 조왕신은, 아마 그런 마음까지도 받아주시겠지요. 괜스레 부담스러워하지 말라고 차라리 위로를 해주시지는 않을까요? 밥 한 그릇 앞에 두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습니다. 글 황록주 경기도 미술관 큐레이터

말이 식구(食口)지, 남편은 일주일에 겨우 두세 번 밥상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밥상머리보다 휴대전화에서 더 자주 만나는 사이라 우리 같은 가족에게 먹거리를 함께 하는 '식구'란 좀 낯선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간만에 저녁 시간을 맞출 수 있겠다는 연락이 오면 모처럼 부엌이 활기를 띱니다.
그런데 찌개와 찬 몇 가지 준비에 분주해지는 저와는 달리 어머님은 새 밥을 지을 채비를 먼저 하십니다. 저녁거리로 충분할 만큼 밥이 남아 있어도 간만에 먹는 집 밥인데 새 밥을 지어 줘야지, 하십니다. 그 말씀이 백 번 옳다 생각합니다. 갓 지어낸 차지면서도 포슬포슬한 밥맛이야 어디 비할 데가 있을까요. 그런 줄을 뻔히 알면서도 저는 아직 어머님의 마음을 따라가려면 한참 갈 길이 멉니다.
그런 각박함을 부러 세상살이 바쁜 탓으로 돌려봅니다. 당신도 그렇지만 나도 일하는 사람이니까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여겨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그래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새 밥을 지을 때마다 조왕신에게 한 그릇 푸짐하게 먼저 올렸던 옛 어머니들의 마음을 쫓아갈 수나 있을까요. 어머니들의 밥은, 식구들의 배를 불리고 살을 찌워 그들의 활동이 가능하게 하고 또 그 모든 것들이 다 바르고 고운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짓는 그런 밥입니다. 그리고 그 밥을 제일 먼저 부엌의 신, 조왕신에게 바친 것이었지요.
강용면의 작품 <온고지신-2000조왕>은 그 살뜰한 마음에 대한 헌사에 다름 아닙니다. 그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놋그릇을 만들어 삶에서 마주하는 자잘한 물건들을 전통의 조각과 채색법으로 제작한 나무 조각품으로 가득 채워놓은 작품이지요. 2~3년 동안이나 정성들여 말린 미송을 하나하나 속을 비워내고 조각해내는 오래된 한국의 목조각 기법을 그대로 이어가는 강용면의 작품은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흔들어대는 울림을 전합니다. 게다가 조왕께 바치는 밥그릇이라니. 부엌과 함께 생활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애잔함을 속속들이 모르고서야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런 그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정겹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슬쩍 잊고 지나게 되는 오랜 살가움이 묻어납니다. 작품 속에 스며있는 민화와 보자기와 단청 같은 것에서 추출해낸 모티프들은 아주 오래된 익숙함입니다. 이제는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부러 내쳐도, 불쑥 눈앞에 드러나면 따뜻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구호뿐인 전통이나 빛바랜 한국성이 아니라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향수를 자극하는 깊은 맛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역설입니다. 마음은 그저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밥솥에 그득한 밥을 두고, 식구들을 먹일 새 밥을 짓는 일이 수월한가 물으면, 대답하기가 좀 곤란합니다. 하지만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마음이 농익으면 시간을 핑계대지 않고도 뜻을 전하는 것이 가능해지리라 믿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저 나도 이만큼은 알고 있으니 그렇게 될 날도 올 거라 겸언쩍은 고백을 좀 해야겠습니다. 이 시대의 조왕신은, 아마 그런 마음까지도 받아주시겠지요. 괜스레 부담스러워하지 말라고 차라리 위로를 해주시지는 않을까요? 밥 한 그릇 앞에 두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습니다. 글 황록주 경기도 미술관 큐레이터
# by | 2008/01/01 11:26 | [art+culture]Food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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