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_society

대한민국 미술잡지와 미술


미디어. 매체. 연결. 연결하는 어떤 것? 하긴 이 복잡한 타자들의 세계를 살면서 매체아닌 것이 어디있으랴. 나를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 사이를 연결하는 어떤 것. 곧 매체다. 예술이 의미라면 작품 역시 작가와 관객 사이를 연결하는 매체임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작품은 소위 '작품 그 자체의 본질'에 좀더 충실해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더 매체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있다면? 바로 잡지다. 동시대 미술이 근본적으로 예술과 사회의 지평 위에 놓여 있다면, 양자를 연결하는 것은 무엇보다 잡지의 몫으로 맡겨진다. 잡지. 더 정확하게는 미술잡지! 대한민국이라는 후진적 예술공화국에서 미술잡지는 나름 연결의 기능에 충실해 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상징하는 그 모든 문화적 상황의 척박함과 그로테스크함 속에서 미술잡지의 생존방식은 어떠했을까? 쉽진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또 한편에선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문화적 척박함이 그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생산되어 온 것도 일면 미술잡지들 때문이 아닐까? 왜 이런 생각을 하는걸까? 왜냐하면, 작품이 매체이면서 또한 그 자체여야 하는 것과 같이, 미술잡지의 '그 자체'여야 할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한 미디어 기능을 뛰어넘는 미술잡지의 그 자체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미술이 의미의 공간 위에 펼쳐진 시각 이미지의 세계라면, 응당 미술잡지 역시 그러한 의미생산의 한 능동적인 주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미술잡지들은 나름의 의미생산에 충실한가? 혹여 남이 생산한 의미만을 과장하고, 또 다른 어떤 남들이 생산한 의미들은 무시하고 버리는 건 아닌지? 달진닷컴(http://daljin.com)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시각예술계에서 나름 지분을 차지한 미술잡지는 대략 15종. 세상에나 이렇게나 많이? 이 모든 잡지들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정확히 그 경의에 상응하는, 아니 그 경의를 넘어서는 혐오를 참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척박함 속에서 이뤄낸 양적 풍성함에 걸맞는 의미의 다양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런 제길. 좀더 쉽게 말해볼까? 볼만한 잡지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까? 좀더 정확히 말하면,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하지 못할 자신만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 입술보다, 펜을 잡은 손보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이해관계를 살피는 눈동자가 먼저 움직이는 것. 말해야 한다. 고만고만 과장된 너절한 가십들말고, 예술과 사회의 결절점에서 미술잡지만이 해야할 의미를 생산하고 악에 받혀 부르짖어야 한다. 너저분한 일반론은 집어치워 버리자. 여기 지금의 미술세상을 양분한 미술잡지는 월간미술과 아트인컬쳐. 여기에 전통의 미술세계, 짧은 시간에 비교적 입지를 굳힌 퍼블릭아트, 이모션 등이 각축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들의 지분에 비해 그들의 목소리는 의외로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들이 생산하는 의미는 가장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 하지만 미술세상에서 미술잡지를 통해 발언되어야할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정작 이른바 ‘조 중 동’을 중심으로한 일간지의 입을 통하는 것도 현실이다. 아트레이드 역시 이런 상황 속에 던져져 있다. 이 잡지의 창간을 준비하던 길고 또 무더웠던 여름이 지났고, 그후로도 두 번의 계절이 또 지나 어느새 7호를 맞는다. 아트레이드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의 미술잡지의 그것들과는 달라 보였고, 또 미술시장을 기존 잡지들의 맨 뒷구석에서 끌어내 지면 구성의 가장 중심에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목이 마르다. 미술잡지들이 이끌어 나가는 신명나는 미술세상이 목마르다. 글_김동일 서강대 강사

by 아트레이드 | 2008/04/01 11:16 | [art+culture]societ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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