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onisme in American Graphic Art, 1880–1920>전_브루클린 미술관_04.26~10.12

일본 전통 문화의 19세기 미국 공습

미국 최초의 일류, 쟈포니즘 Japonisme과
 
미국예술


1941년 7월 1일 오전 6시. 곤히 잠들어 있던 사람들의 위로 갑작스럽게 하늘을 뒤덮은 비행기들이 나타난다. 폭격소리로 잠을 깬 대니(조쉬 하트넷 분)와 애벌린(케이트 베킨세일 분) 눈앞에는 폭음과 함께 진주만의 거함들이 화염에 휩쌓이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영화 진주만에 나온 한 장면처럼 일본은 그렇게 20세기 미국을 급작스럽고 거칠게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의 험악한 관계는 한 순간이었을 뿐 일본문화는 2008년의 미국 브루클린 미술관을 장악했다. 3월 21일부터 시작한 일본 판화의 대가 우타가와 전 (Utagawa: Masters of the Japanese Print, 1770 - 1900), 4월 6일 오픈한 무라카미 (MURAKAMI) 에 이어 4월 26일부터 열리는
(Japonisme in American Graphic Art, 1880–1920)을 통해 우리는 19세기 미국예술에 들어 닥친 일본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일본의 21세기 브룩클린 미술관 공략기. 이제부터 시작해보자.


19세기의 일류의 주역, 우키요에

일류의 선봉에 서있던 우키요에는 17세기 일본의 에도(현재의 도쿄)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대중예술의 한 종류였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인기 있는 연예인 사진이나 가고 싶은 장소의 사진을 모으는 것처럼 우키요에 역시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던 가부키 배우, 기녀, 명승지 등을 주제로 사용한 목판화였다. 목판화의 특성상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너무 흔해 가치가 전락한 우키요에는 당시 활발했던 서양과 일본의 교류과정에서 일본의 상품을 싸는 포장지로 쓰여진다. 그리고 그 포장지가 19세기 후반의 서양 회화를 벗어나 새로운 그 무언가를 찾고 있던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우키요에가 가지고 있던 단순한 선, 밝은 색채, 구도의 대담성과 같은 속성이 서양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게 된 것이다. 우키요에는 1890년 에콜 드 보자르에 전시되었고, 파리 화랑가에는 일본 옷을 입고 차를 마시며 우키요에를 모방하는 이른바 자포니즘이 유행했었다. 이미 1880년대 후반 당시에는 일본 수공예품은 유력한 화가의 아틀리에나 실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최신 유행 장식품이었고 그 유행의 한복판에는 반 고흐, 모네, 드가, 고갱, 로트렉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뚤루즈 로트렉은 일본풍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고갱의 방 안에는 우키요에가 한 쪽 벽면에 붙어 있었고 모네의 수련연작이 나올 수 있었던 지베르니 정원에는 일본식 정원까지 건축되어 있었으니 그 열기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19세기 말 일본에서 우키요에의 전성기가 지났을 무렵에도 유럽의 쟈포니즘의 열기는 여전했고 파리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미국의 여러 화가들 역시 그 열기에 휩싸여있었다.


우키요에에서 미국의 그래픽 예술로

아름다운 색채와 강렬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일본예술은 미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안도 히로시게, 1797~1858), 가쓰시카 호쿠사이 (1760~1849)와 같은 18세기 후반, 19세기의 색목판화 거장의 작업을 미국 예술가들이 크게 선호하였으며 그들의 작업은 집요하게 서양에서 수집되었다. 또한 개성을 갖추는 동시에 기술적인 혁신을 위한 미국예술가들의 노력에 있어 가장 영향력있는 모델이 되었다. 더욱이 화면구성과 색의 사용 외에도 당시 회화매체로 인정되지 않던 수채화, 파스텔, 에칭 등의 매체는 일본예술과의 만남으로 인해 재발견된다. 그들이 염두에 두지 않던 재료들의 놀라운 표현력과 창조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예술과의 만남으로 자극받은 미국의 예술가들은 일본의 사물, 디자인, 미적 원리를 수용했고, 심지어 일본에 살며 그들의 전통문화를 직접 수학하기도 했다. 화면의 일부를 부각시키는 시점이나, 인물의 일부분을 과감하게 절단하기도 하고 평면적인 화면의 여백을 살리는 등의 기법이 바로 그 영향이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 (James McNeill Whistler, 1834 ~1903) 와 같은 경우, 검은색의 극적인 대조의 구도와 미묘한 공간 효과를 창조했는데 그의 미학은 죠셉 피넬 (Joseph Pennell, 1857 ~ 1926), 로버트 블럼 (Robert Blum, 1807 ~ 1848) 을 포함한 수 많은 젋은 미국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메리 커셋 (Mary Cassatt, 1845 ~ 1926)은 그녀의 과감한 스타일을 창조하는데 일본 판화로부터 영감을 받았는데, 특히 그녀의 에칭 작품들에서 보이는 평평한 대상들과 조절되지 않은 색의 평면 그리고 강한 선의 사용에서 알 수 있다. 몇몇의 작가들은 일본예술과 좀 더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베르타 럼 (Bertha Lum, 1869 – 1954) 과 헬렌 하이드 Helen Hyde(1868-1919)는 실제로 몇 년 동안 일본에 살면서 일본의 전통 판화 기술을 배웠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작업은 일본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서양의 기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을 정도이다. 또한 색상이나 주제의 선택은 그들이 살았던 환경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둘은 운 좋게도 그들의 목판화는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고 일본의 대중들에게 일본 스타일과 주제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미국과 일본, 서로를 향한 애정

브룩클린 미술관은 미국에서 셀러브리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열렸던 무라카미전( MURAKAMI)과 일본판화의 대가 우타가와 전 (Utagawa: Masters of the Japanese Print, 1770–1900) 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쟈포니즘전 (Japonisme in American Graphic Art, 1880 -1920) 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의 현대미술에서 전통 목판화, 그리고 미국 그래픽 예술 graphic arts 에 끼친 영향까지 연속으로 세 개
의 전시를 개최하면서 일본 문화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알리고 있다. 특히 전시들의 기간을 서로 겹치도록 준비해서 - 심지어 이 세 전시는 같은 기간에 시작해서 같은 6월 중순에 끝난다.- 일본과 미국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진한 관계를 보여주는 기회인 듯하다. 마치 과거의 불편한 시간을 넘어 문화의 힘을 통해 둘의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려는 의지로 비춰지는 이번 전시. 미국인의 눈으로 재해석된 일본의 감성과 문화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브룩클린으로 가보는 게 어떨까?(T +1 718 501 6331) 권정원 수습기자


Helen Hyde <White Peacock> Woodblock print 1914 21 x 25.4 cm

Arthur Wesley Dow, <The Long Road--Argilla Road, Ipswich> Color woodcut on paper 1898 * Sheet: 5 3/8 x 8 1/2 in. (13.7 x 21.6 cm) Image: 4 1/4 x 7 1/16 in. (10.8 x 17.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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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레이드 | 2008/04/19 23:42 | Preview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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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ostman at 2008/04/24 16:09
"브룩클린 미술관은 미국에서 셀러브리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열렸던 무라카미전( MURAKAMI)과 일본판화의 대가 우타가와 전 (Utagawa: Masters of the Japanese Print, 1770–1900) 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쟈포니즘전 (Japonisme in American Graphic Art, 1880 -1920) 을 전시하고 있다."

- 'J-POP'은 흔히 '우키요에'와 문맥을 이루는 것으로 말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 주목한다면 브룩클린 미술관이 J-POP의 일명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무라카미( MURAKAMI) 전시를 일본판화의 대가 우타가와 (Utagawa)와 함께 기획한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일본에 '우키요에'가 있었다면, 당시 조선에는 '토박이미술(민화)'이 있었지요. 2005년인가요, 가나아트센터에서 'POP'을 슬러건으로 내건 전시(한국과 일본 팝)가 있었습니다. 일본 팝은 우키요에에 주목한 반면, 한국 팝(?)은 그 근거가 빈약해 보입니다. 만약 한국 팝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토박이미술'을 전제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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