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15일
유인촌 장관의 자진사퇴 촉구 발언
장관님이 말했던 ‘보이고 들리는 문화’가 이런 건가요?

유 장관의 애매한 사과와 민노당의 고발 사건의 발단은 3월 12일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유 장관의 발언이었다. 유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및 산하 기관장들의 자진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알아서 ‘나가라’는 말이다. 유 장관은 자진사퇴의 근거로 “정부든 기업이든 정권이나 경영진이 바뀌기 전에는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이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예의인데 작년 하반기에 이뤄진 인사를 보면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행여 정권이 바뀌었으니 ‘나가라’는 말의 설득력이 떨어질까, 유 장관은 자기 역시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서울문화재단 초대 대표를 맡아 일하던 중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자 임기를 5개월 정도 남겨두고 스스로 물러났다”고 강조했다.
고석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 박래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권영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오지철 한국관광공사장, 최태자 국립발레단장, 정은숙 국립오페라단장, 그리고 지난해 9월 선임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과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이 유장관 발언의 사정권 안에 드는 인물들이다. 유장관의 발언에 앞서,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은 3월 5일 자진사퇴한 바 있고,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7일 경질되었다. 발언 이후인 14일에는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17일에는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과 신현택 예술의 전당 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 중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사표는 반려됐다.
자진사퇴발언 하루 뒤인 13일, 청와대 측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의 사퇴가 “여의치 않을 경우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하고, “이전 정권 기관장들은 대통령 업무보고에 참석하지 말라”며 구정권 기관장들 왕따 시키기에 나섰다. 이를 두고 언론과 여론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현장 중심 브리핑이어서 장소가 좁아 모두 불참시킨 것”(한겨레, 03.14)이라고 해명했다.
하필 김 위원장과 김 관장?
14일, 유장관은 자진사퇴를 재차 강조하더니, 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하 ‘김 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이하 ‘김 관장’) 등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순리 아니겠는가”(03.17)라고 실명을 거론하며 폭탄발언을 했다. 왜 하필 김 위원장과 김 관장인가?
현 정권의 전 정권 인사들의 퇴진발언의 근거는 “참여정부의 코드인사”이다. 즉, 노무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임명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고로 이들은 현 정권과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관, 철학 등에서 큰 차이”가 있으므로 국정운영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김 관장과 김 위원장이 코드인사였는가 여부를 우선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김 위원장과 김 관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유 장관의 또 다른 근거와 함께 그 시비를 가리기로 하고, 여기서는 유 장관의 발언이 가지는 문제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실제로 김 위원장과 김 관장은 현 정권이 지목하는 “참여정부의 코드인사”라는 누명을 씌우기가 적격인 인물들이다. 양자 모두 민중미술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고, 미술계 진보 좌파의 축을 형성해왔다.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실제로 진보나 좌파라고 불리는 세력이 주변부에서 체제의 내부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권부터였다. 길게는 지난 10년간 정권의, 짧게는 노무현 정권의 좌파적 성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인물이 김 위원장과 김 관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좌파 세력이 국내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연간 1,000억원대의 예산을 굴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 상황에 대한민국 대표 보수 우파 집단인 한나라당이 보기에, 민중미술이라는 좌파적 성향이 강한 세력의 중심에 서있었고, 현재는 한국 미술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인 김 위원장과 김 관장은 현 정권의 재물로 가장 적합했던 것이다. 게다가 2007년 중후반에 임명된 인물이라니, 노무현 정권이 현 정권을 방해하고자 억지로 심어놓은 ‘코드인사’라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적격이다.
이념과 철학이 다르므로 나가라?
유 장관은 실제로 이들이 코드인사였다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한 바 없다. 단지 이들의 성향이 참여정부의 ‘이념과 철학’에 가깝다는 정황 증거만이 있다. ‘이념과 철학’은 유 장관이 이들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 점이 문제다. 현 정권과, 혹은 현 문화체육관광부와, 혹은 현 장관과 정치적 이념과 철학이 다르다는 사실이 정당한 퇴진 근거가 되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1항) 민주공화국은 “권력의 기초로서 국민주권의 원리,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민주주의’, 권력구조면에서 권력분립주의, 의회주의와 법치주의에 의한 정치과정의 통제, 세계관에서 ‘상대주의’, 사회와 국가의 이원주의 등을 바탕으로 한다.” 민주공화국이 세계관에서 상대주의라는 점은 “개개인에게 실질적인 신념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즉, 민주공화국에서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문자 그대로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로 사회적 불평등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엄격하게 말해서 위헌 아닌가? 코드가 다르다고, 세계관이 다르다고, ‘나가라’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마녀사냥’을 상기하게 할 뿐이다.
유 장관 발언은 임기보장법 위반
유 장관의 ‘자진사퇴’ 발언은 실제로는 ‘권고사직’에 다름 아니다. 즉, ‘해고’다. 그러나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더라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임기가 남은 국공립 기관장들을 임의로 해고할 수 없다. 임종석 통합민주당 수석부대표에 따르면, “공공기관장 임기 보장은 노무현 정부 때 코드인사를 막겠다며 한나라당에서 주도한 법안”(조선일보, 03.14)이다. 즉, 유 장관의 자진사퇴 발언은 바로 현 여권인 한나라당 스스로 만든 법에 저촉되는 것이다.
지난 21일 민노당이 유 장관을 고발한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 장관 고발건을 추진한 지금종 민노당 후보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되는 공무원을 협박으로 사퇴를 조장한 것”이 고발의 근거라고 밝혔다. 또한 “정치는 정치논리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럼에도 개선의 의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유감스럽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유 장관은 권력의 나팔수?
민노당이 유 장관을 고발하기 앞선 3월 17일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이 ‘완장 찬 유인촌 장관은 망언의 폭력을 멈추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염신규 민예총 정책기획팀장은 “유 장관이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며, “최근 유장관의 모습은 권력이란 낮술에 취해 폭력의 칼을 휘둘러대는 망나니를 보는 듯하다. 유장관에게 아직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인간적 양심이 있다면 자신의 망발에 대해 진심으로 자성하고 사과하라. 더불어 권력의 나팔수가 아닌 문화행정 수장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라”고 강경하게 문책했다.
유 장관의 자진사퇴 발언을 처음 했던 12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이명박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은 조기 퇴진할 것을 촉구했고, 하루 전인 11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전 정권에서 기용된 세력들이 아직 각 언론 · 방송, 문화 · 시민단체 등 가계의 주요 자리에 남아서 발목을 잡고 경제 살리기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에 유 장관의 자진사퇴 발언은 유 장관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 장관이 실제로 현 정권으로부터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전 정권의 인사들을 현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자진사퇴할 것을 강요하는 발언에서 보이는 유 장관의 모습은 권력의 나팔수에 다름 아니다. 모든 이념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해야 할 문화계의 정책을 추진하는 수장인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이런 모습으로 비춰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유 장관은 취임 전인 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장관 후보들의 합동워크숍 자리에서, 그리고 취임 연설문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문화에서 보이고 들리게 하는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유 장관이 사과(?)에서 언급했듯이, “근래 뉴스의 중심에 유 장관이 서 있는 것 같아” 문화체육관광부는 확실히 ‘보이고 들리게 되었다.’ 유 장관이 말하는 보이고 들리는 문화가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유 장관은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취임 연설문에서 밝힌 바 있다. 본래 취지대로, 보이고 들리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이념과 임기 보장 조항을 무시한 발언에 대한 사과를 명확히 하기 바란다. 그래서 권력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벗고 정말 보이고 들리는 문화를 만드는 일에 정진하길 바란다. 글 민병교 기자 공동취재 태윤미 기자
염신규 민예총 정책기획팀장과의 인터뷰
성명서를 내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유장관의 발언과 관련해서 문제는 예술계를 정치적 잣대로 평가하려 한다는 점이다. 중요힌 것은 국공립예술기관의 수장들이 ‘전문성’이 있는가이다. 여기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논리로도 유장관은 절차를 지켜야 한다. 둘째, 김정헌 위원장과 김윤수 관장을 지목했는데, 결격사유가 있다면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철학이 다르다’는 타당하지 않은 근거를 제시하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거의 협박조로 발언을 했다.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나가라고 협박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정헌 위원장과 김윤수 관장 모두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라는 말이 많았다. 특히, 위원장 평가에서 차점자였던 김정헌씨를 위원장으로 만들기 위해, 김병익 위원장을 몰아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평가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은 위원장 자리를 마다했다. 김병익 위원장은 장관에 의해 임명된 것이었다. 사실 김병익 위원장을 두고는 민예총이나 문화예술위원회 위원들도 물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김정헌씨가 위원장이 된 것으로 전적으로 위원회 내부에서 당시 상황에 따라 순리적으로 결정한 일로 알고 있다.
유장관은 1기 위원의 연대책임 이야기를 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연대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에는 평가하지 않겠다. 그러나 연대책임으로 퇴임이 온당한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발촉 당시부터 장르 간 갈등이 예측되었다. 물론 이상은 이를 최소화하고 적절히 예산을 분배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이상과 현실 간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이다. 1기 위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최대한 모색하고 체계화한 뒤 차기 위원회가 발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윤수 관장의 정준모 전 학예실장 해고는 타당했다고 보는가?
- 이 문제는 상당히 말하기가 난감하다. 성명서에는 정준모씨 “재직 중의 비위 사실이 드러나 그의 해임이 정당했음이 입증”되었다고 적었으나, 이 문제를 내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대신 김윤수 관장은 어떤 비리나 문제를 일으킬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워낙 학자 스타일이라 사회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자기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할 사람은 아니다.
유장관의 행보에 대해 굉장히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유장관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나?
- 공직 입장에서 말과 일을 가려 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유장관의 발언과 관련해서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취임사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그대로만 한다면 너무나 좋다고 생각한다. 홍보부가 합쳐졌다는데서 더 우려된다. 자칫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정 홍보를 위한 기관이 될까 걱정된다. 최대한 정치논리를 예술계에 투영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은 민예총 성명서에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예총과 예총의 싸움이 될까 우려된다.
- 예총과 싸우고 싶지도, 싸울 필요성도 못 느낀다. 예총도 문화예술의 발전을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어떤 식으로든 문화예술계에 데뷔하면 자동으로 예총 소속이 된다. 나도 예총 소속이고, 민예총의 상당수가 예총 소속이다. 이런 점에서, 예총과 민예총은 성분적으로 갈등관계에 있지 않다. 같이 모여서 문화계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논했으면 한다. 예총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민예총이 마치 지난 좌파(?) 정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것처럼 말했는데, 민예총이 주변부에서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것뿐이다.
성명서를 발표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문화예술단체들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향후 계획은 어떤가?
-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 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다만 정권이 문화예술분야에 산적해 있는 문제점들을 잘 해결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 우리는 현장 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종 민노당 후보와의 인터뷰
유 장관의 발언은 정확히 어떤 법에 위배되는가?
- 1) 협박죄, 2) 공무집행방해죄, 3) 문예진흥법(위원임기권) 위반, 4) 집권남용이다. 1번과 4번은 상상적 경합법에 해당됩니다. 실질적 원인은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이 되는 공무원을 협박으로 사퇴를 조장하는 것이다.
어제(20일) 유 장관이 사과를 했다. 그럼에도 고발했다.
-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약 올리는 것이다. 뭐라 그랬죠? “뉴스의 중심에 서 있어서 죄송하다”고 말했는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다. 그렇잖아요.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것이지, 자기반성의 의사가 없다.
민노당에서는 반응과 조치가 늦은 것 아닌가?
- 기다려 준 것이다. 고발 예정을 이틀 전에 발표하지 않았는가? 그 사이에 유장관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과도 사과가 아니라 약을 올린 것이다. 개선의 의지가 없다.
고발은 너무 극단적인 방법 아닌가?
- 물론 법적으로까지 끌고 가려 한 것은 아니다. 정치는 정치논리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럼에도 개선의 의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유감스럽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혹시 총선을 앞두고 주목받기 위한 전략 아닌가?
- 전혀 무관하다. 혹시 이렇게 볼까봐 걱정이다. 이런 점에서는 시기가 안 좋았다. 그러나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바로 잡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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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4/15 22:45 | Hot Issue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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