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작가 탄생비화_박수근


박수근과 바보온달
왜, 박수근은 국민적 영웅인가?

밤을 자고 나니 영웅이 되어있었다고 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이야기처럼 박수근도 그런 처지와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랜 동안, 그리니까 확실하게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모더니즘 세력이 맥을 못 추면서 그런 처지가 되었던 같다. 화단의 중심세력으로 볼 때 박수근은 변두리의 촌뜨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화단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은 아직도 철저한 모더니즘의 우상숭배자들이고 미술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세력으로 남아있다. 코미디다. 모더니즘의 본고장에서 조차 이미 유통되지 않는 지폐를 일말의 양심도 없이 버젓이 유통되는 것을 방조하거나 그 과정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들이 촌뜨기라고 여겼던 박수근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그 그림 값도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 아닌가. 환장할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림 값에 한한한 나 자신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의 유통경제의 메커니즘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수근이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믿지만, 슬프게도 가격과 박수근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이고 살 집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던 화가의 미망인은 그 엄청난 그림 값을 접하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민적 영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은 정승이 살아있는 개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비관은 말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 석 자를 남긴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도 국민화가라는 엄청난 이름을 남기고 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박수근은 왜 국민적인 영웅인가. 

한류를 만들었던 화가, 박수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류(韓流)라는 개념이 생겼다. 주로 TV드라마나 영화가 중국이나 일본에 수출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작품들의 내용을 보면 모더니즘 숭배자들에게는 코미디와 같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모더니즘을 엿 먹이는 내용이기거나 수준미달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그런 작품들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흥행에서도 대박을 터뜨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엄연한 변화에 대해 여전히 모더니즘 숭배자들은 침묵을 지킬 뿐이다. 그렇게 보면 박수근도 모더니즘이 지배 하는 화단에서 사실상 한류를 만들어 내는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본의든 타의든 그의 작품은 이미 모더니즘을 엿 먹여 왔다.
그렇다면 박수근에게 있어서 한류란 무엇인가. 나는 흥미롭게도 그 한류의 텍스트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바보온달은 고구려시대의 덕장으로 국가적인 영웅이었고 평강공주는 그 아내였다. 그 이야기는 그대로 박수근이 왜, 국민의 영웅인지를 이해하는 텍스트가 되어준다고 믿는다. 

바보 온달에게 시집 간 평강공주와 박수근
바보 온달은 《삼국사기》의 열전(列傳)에 당당히 올라있는 위인이다.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 때의 사람으로 용모가 기이하게 생겨 사람들이 우습게 여겼던 사람으로 그 마음만은 착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다 떨어진 낡은 너덜 옷을 걸친 채 저자를 왕래하며 구걸하였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이때 평원왕에게는 울보 공주가 있었는데 하도 울므로 부왕은 늘 협박하며 “그렇게 울면 사대부 부인은커녕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가야 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공주가 막상 시집갈 때가 되자 왕은 귀족(上部)의 고(高)씨에게 공주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공주는 이렇게 항의하며 막 무가내였다. “대왕께서 어찌 두 말씀을 하십니까. 저더러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두 말씀하십니까?” 어쩔 수 없이 왕은 공주를 쫓아버렸다.
여기까지 보면 박수근은 온달보다는 평강공주에 더 어울리는 모델이 된다. 평강공주가 높은 곳으로 시집가지 않고 낮은 곳으로 시집가게 되는 대목은 박수근의 코드에서는 그가 화가가 되기 위해서 해외유학을 떠나지 않고 시궁창 같은 시골에 그대로 주저앉은 상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어찌 화가를 꿈꾸면서 일본유학을 시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종자돈을 훔쳐서라도 일본으로 건너가야 영웅이 될까 말까 했던 때이다. 온달 코드에 맞추자면 박수근은 평강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외국으로 시집가지 않고 황폐한 식민지조국에 주저앉았던 셈이다. 평강공주가 부왕으로부터 버림받고 제일 낮은 곳으로 내려와 바보 온달과 살았던 그 정황과 다르지 않다. 동시대의 많은 화가지망생들은 일본 유학을 떠났다. 말하자면 상부의 최 씨에게 시집갔고 결국 그들은 파란 눈의 아이(모더니즘)를 하나씩 들러 엎고 금의환향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이 나라 미술계의 실세가 되어 국전을 자치우지하고 대학의 교수자리를 독차지 하게 되며 사실상 우리 미술을 현대화하는데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박수근과 같은 촌뜨기가 어떻게 감히 명함을 내밀 수나 있었겠는가. 그들은 큰 소리로 숨도 못 쉬며 변두리 촌닭으로 살아가야 했다.
평강공주과 그 반려자인 바보 온달은 박수근을 이해하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바보 온달은 일본유학은 고사하고 겨우 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예배당을 드나들다가 겨우 본 그림이 이발소 그림으로 알려졌던 밀레의 <만종>을 보았고 거기에 감동되어 화가의 꿈을 꾼다. 바보 온달 코드이다. 젊은 날 그와 모임을 가졌던 최영림, 장이석, 황유엽등도 모두 쟁쟁한 일본유학파들이 아니었던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삶과 그림
다시 바보온달의 텍스트를 챙겨보자. 평강공주는 왕궁에서 쫓겨나 보따리 하나를 달랑 들고 간신히 온달의 집으로 기어들었다. 어떻게 온달의 모친이 그녀를 바라 볼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땅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며 제발 맞아들일 수 없다고 애원한다. 그러자 공주는 말한다. 

“선인들이 말하기를 한말의 곡식이라도 찧을 수 있으면 족하고 한 자의 베라도 꿰맬 수 있으면 족하다 했는데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이면 부귀가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도깨비 방망이 같은 모더니즘이 있다한들 그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요. 사람들은 모두 표현주의 야수파 입체파 추상표현주의를 말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오직 두 사람 사랑만 있다면 허접스런 산수화나 사군자화인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림이 팔리지 않거들랑 그림을 가마솥에 넣어 삶아먹으면 그만이지. 평강공주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박수근은 결혼한 직후 그의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가난한 화가인 나로서는 여유 있는 생활을 못할지라도 정신적인 사랑과 이해로써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같은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과 소박함은 나의 절대적인 반려자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좋은 걸작이 나올 수도 있을 거구요.”

온달이 화가였다면 평강공주에게 이런 편지를 썼을 것이다. 박수근이 결혼 후 평양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한번은 휴가로 집으로 왔다가 되돌아갈 때였다. 아내가 역으로 배웅을 나왔는데 기차가 떠나자 아내는 남편을 향해 절을 했는데 머리를 들어보니 이미 열차의 꽁지만 보였다. 많은 승객들이 이를 보며 웃었던 모양이다. 박수근이 엽서에다 그 사연을 적으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일상생활의 한 장면이다. 박수근은 그 아내의 모습에서 ‘조선의 여인상’을 보았으며 곧 <절구질하는 여인>이나 <맷돌질하는 여인>이 탄생했다. 그것은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을 이해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의 팝 아티스트
박수근의 그림에는 바보 온달의 일상성이 드러나 있었으므로 이를 우리의 진정한 의미의 팝아트라고 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그 팝이 60년대 이전에 존재했으므로 촌뜨기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팝이 수입되었을 때에도 아무도 박수근의 그림을 우리의 팝이라고 떠든 사람은 없다. 미국적인 팝의 족보가 있어야 촌뜨기를 면할 수가 있다. 그 말은 옳다. 박수근의 바보 그림과 미국적인 팝의 그림은 문법이 다르다. 미국의 팝은 바보스런 그림이 아니라 유럽 모더니즘지배에서 해방되기 위한 몸짓이다. 빨래하는 모습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 방아를 찧는 모습, 저자에 가는 모습,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는 노인의 모습, 아이보기, 목판장사, 지게꾼, 물동이 인 아낙네, 그것들은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즐기는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다르다. 그들도 명칭이야 미국의 민중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그 그림의 저의를 들여다보면 바보의 미학이 아니라 대량생산시대의 소비문화를 선전하는 소비문화의 선전 그림이다. 그런 상황이니 누가 박수근의 그림을 진지하게 우리의 팝이라고 나팔 불어주겠는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평강공주의 코드로 다시 돌아가 보자. 평강공주는 바보온달을 서방으로 맞으며 온달에게 시장에 가서 말을 사오라고 부탁하며 이렇게 주문한다.

“말을 사되 장사꾼의 말은 사지 말고 관아에서 쓰던 국마(國馬)를 사세요. 국마는 병이 들거나 야위어 처분하는 것이니 그런 말이 보이면 거기에서 가려사세요. 그런 것이 없다면 일단 좋은 말을 샀다가 뒤에 국마와 바꾸어 와요.”

온달은 공주의 말대로 했다. 오랫동안 부려먹어서 볼품없이 배트라진 국마는 온달의 품에서 정성껏 돌보아져 말은 날마다 살찌며 건강하게 자랐다. 그러던 중에 온달은 임금님의 사냥에 몰이꾼으로 수행하게 되었는데 그의 말은 그 어떤 국마보다도 날래고 힘차게 씽씽 달리었고 사냥감도 제일 많이 잡게 되었다. 왕의 눈도장을 받기에 충분했다.
온달의 이 코드를 박수근에게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장사꾼의 말은 사지 말라’는 말은 화상들이 뒷거래하며 팔고 사는 시류의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것이고 볼품없이 배트라진 국마는 전통적인 산수화나 풍속화와 같은 그림으로 이것들은 이미 매너리즘에 빠져 의사소통의 기능이 죽어있었던 그림이다. 박수근은 씽씽 잘나가는 이른바 현대미술 쪽이 아니고 비록 언어기능이 마비된 상태였지만 전통화를 사다가 나름으로 열심히 연구하여 그 기능을 끌어올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해서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코드는 박수근인 것이다. 상황은 온통 야수파니 입체파니 표현주의니 하는 것들로 박수근의 시야를 가로 막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마음속(평강공주)에서는 그런 유혹들을 젖히고 비록 허드레가 되기 했지만 박수근은 그 허드레(전통회화)를 정성껏 걷어안았고 그는 누가 무어라고 하던 바보처럼 그것들을 닦고 다듬어 마비된 언어기능을 되살려 내려했다. 닦고 다듬는다는 말, 그것은 곧 형식과 기법을 창안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수근이 바보 온달이면서도 정말 바보가 아니었다는 증거는 바로 이 대목이다.
그는 여기저기에서 설쳐대는 현대미술을 접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예감하고 있었다. 바보에게만 주어진 신의 축복이다. 우리는 그것을 모더니즘이 선사한 평면양식과 마티에르라고 한다. 박수근이 그런 짓을 하자 그를 촌닭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괄목상대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정도였다. 모더니즘 숭배자들에게는 아무리 구르는 재주가 있어도 여전히 촌뜨기 그림임에는 틀림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착각인지는 좀 더 시간이 흘러야 깨닫게 된다. 박수근은 당대에 최영림이나 황유엽이 그랬던 것처럼 고분벽화의 마티에르(화강암의 질감)에 관심을 가졌고 당대에 미묘한 반향을 일으켰던 일인학자 야나기((柳宗悅)의 ‘조선의 미’에 의해 백자(막사발)나 초가집이 다름 아닌 평강공주의 코드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더니스트 화가들에게는 잠꼬대와 같은 소리로만 들였던 것이지만.

모더니즘의 신화가 거품이 되자 거기에 있었던 건
하지만 80년대 이후로 들어서자 모더니즘 신화는 본고장에서도 매너리즘에 빠졌고 우리에게도 사실상 거품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더니즘은 이제 부도수표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고 실험미술이 어떻고 설치미술이 어떻고 비디오 미술이 어쩌고 하는 나팔 불기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보온달 코드는 팔자(八字)이고 그 팔자가 바보의 미학이며 무의자연이라는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의 침략을 받는 위기를 맞자 우쭐대던 장수들은 맥을 못 추고 바보로 불리었던 온달은 그가 가꾼 국마를 타고 드디어 전쟁영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때 처음으로 왕은 이렇게 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사람이 나의 사위(박수근)이요.” 글 박용숙 미술평론가


 

by 아트레이드 | 2008/04/01 22:09 | 스타작가의 탄생비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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