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전_갤러리 담_04.01~04.09

가지각색 동양화의 미래를 들여다 보다
가능성 한 가득 젊은 작가들의 동상이몽

고주미, 김봄, 김태연, 변윤희, 한경희. 다섯 명의 작가들의 공통점은? 젊다. 여자다. 덕성여대 대학원 재학생이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동양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동양화의 범주에 속할 뿐, 이들이 서로 다른 주제와 재료로 구축하는 새로운 동양화의 세계는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이 <동상이몽>이란 이름으로 갤러리 담에서 전시를 한다. 지금부터 동양화라는 기치에 모인, 이미 주목받기 시작한 혹은 주목받을만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번 둘러볼까 한다.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동양화
김봄. 컬렉터들에게는 전시 작가 중 가장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옥션쇼와 화랑미술제를 포함해 10군데에서 그룹전을 했다. 올해는 중앙미술대전에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이미 가격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그림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색감도 ‘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채롭고 산뜻하다. 컬렉터들의 눈을 사로잡을만한 그림이다. 집에 걸어두고픈 작품이다.
그녀는 ‘조립된 산수’를 만든다. 같은 풍경이라도 보는 각도와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 풍경들을 재조직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고로 김봄의 조립된 산수는 본래 산수가 아닌 김봄의 산수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녀의 풍경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종묘 작품 역시 보는 이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함께 선사하고 있다.

김태연. <동상이몽>전의 작가들 중 전통적 의미에서의 동양화에 가장 가까운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벽화와 같은 느낌에 핸드폰이나 하트 같은 현대적 소재들을 삽입해 보는 이에게 흥미를 유발한다. 벽화의 느낌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냄을 보건데, 굉장히 소질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동양화에 현대문명의 요소들을 삽입해 현대문명을 아이러니사이징하는 감각 역시 높이 살만 하다.
고주미. 마치 디지털 아트와 같은 느낌을 주는 그녀의 작품에는 도시와 바다가 함께 녹아있다. 현실과 탈출구의 공존. 덕분에 그녀의 작품에서 도시는 바다와 같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무채색 건물들 역시 숨 막히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고요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도시 섬”을 만들고, 그녀가 바라는 도시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변윤희와 한경희 역시 일상과 세상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시각을 작품에 적절하고 성공적으로 투영해내고 있다.

아직은 부족한 작품철학
감각 있고 가능성 있는 작가들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작품에 장구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철학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김봄은 “자연은 순수하고 완벽한 시각에 의해 사물 자체로서 관찰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곧 해석자이고, 각기 다른 각도와 시선에 의해 자유롭게 변화하여 인식 된다”고 작업을 하게 된 자기철학을 밝힌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그녀는 “부분과 전체, 실재와 허상, 과거와 현재, 디테일과 스케일, 변화와 정지가 공존”하게 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외부세계의 대상의 본질은 이미 소여되어(given) 있어 누군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해석되고 부여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가깝게는 비트겐슈타이니안 피터 윈치부터 칼 만하임 이래의 지식사회학, 멀게는 18세기 비코마저도 언급한 사실이다. 부분과 전체, 실재와 허상, 과거와 현재 등 이분법의 붕괴 역시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서 20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모두 붕괴되었다. 20세기 말에 이미 이분법의 붕괴에 대한 안티테제까지 나온 상황이다. 한 마디로 김봄의 작품철학은 전혀 새롭지 않다.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각도로 관찰해서 찢는 작업은 이미 세잔이 시도했던 바 있다. 방법론 역시 새롭지 않다. 동양화의 재해석 역시 그다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김태연 역시 한계를 보인다. “지금 세상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들이 유물이 된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것들은 언제까지 옳고 언제까지 당연한 것일까”라고 작품의 사상적 배경을 서술한다. 여기서 다시 아쉬움을 느낀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미셸 푸코가 계보학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가들의 아이디어였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의 에밀 뒤르켐과 칼 맑스가 이미 했던 생각이다. 역시 그녀의 아이디어 역시 새롭지 않다. 게다가 이 같은 작업은 자신에게 인식론적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고주미, 변윤희, 한경희의 작업은 내밀하다. 그리고 개인의 내밀한 사상과 경험을 외부와 소통하는 채널을 아직 탐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 충만한 젊은 작가들에 주목하라!
작품들에서는 작가들이 굉장한 노력과 시간을 투여했음이 드러난다. 여기에 동양화를 재해석하는 작가들이라는 점은 이들의 가능성을 더해준다. 갤러리 담의 <동상이몽>전은 분명 좋은 작가, 가능성 있는 작가를 선정했다. 이처럼 좋은 작가들의 작품에 담긴 철학이, 미술도 아닌, 사회과학과 철학 분과의 사상보다 다소 뒤처지거나,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잔인한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대학원을 채 졸업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철학이 아직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이들이 50년 후에, 100년 후에도 기억할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자기 철학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이미지를 생산해낼 수 있는 작가들이 확고한 자기 철학을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가가 될 것이다. 컬렉터들은 필히 전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들의 작업세계가 완벽해지는 날, 무척이나 가치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니 말이다. 가능성 충만한 젊은 작가들의 <동상이몽>을 들여다보러 가볼까? (02 738 2745) 글 민병교 기자

by 아트레이드 | 2008/04/01 22:02 | Preview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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