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as Life>_Museum of Contemporary Art, LA_3.23~6.30

앨런 카프로우

연금술을 부정한 연금술사의 딜레마

 

“늘 새로운 예술, 진정 새로운 예술을 꿈꿔왔다. 이 다른 개념의 예술에서, 예술가는 삶에서 시작한다. 회화, 조각, 춤이나 음악을 찾지 마라. 예술가는 이것들을 제공할 의도를 포기한다. 일어나야 할 것은 ‘해프닝’이다.” - 앨런 카프로우, 1959

 

앨런 카프로우(Allan Kaprow)를 소개하려면 마르셀 뒤샹이라는 현대미술계의 유령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뒤샹이라는 종의 기원에서 진화한 종적 존재 중 하나였다. 뒤샹이 소변기를 갖다 놓고 <샘(Fountain)>(1917)이라 명명한 사건은 지배적 미학에 대한 급진적 반기를 드는 효과를 낳았다. 레디메이드라는 일상 용품이 비예술적 오브제가 예술이 된다는 것은 아무 것이나 다 예술이 될 수 있단 말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는 고상한 전시장에 있는 우아한 그림과 조각만이 예술이 되는 제도권 미술에 대한 도전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뒤샹의 도발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샘>이라는 소변기는 지금 어디 있는가? 원본은 없어졌고, 뒤샹이 인가한 복제 <샘>은 테이트 모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게다가 2004년 영국 미술계 전문가 500명이 선정한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1위에 올랐다. 어느 덧 보수적 미술계를 거부한 <샘>이 현대미술계의 가장 보수적 지위를 확보한 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즉, 뒤샹은 소변기를 전형적으로 예술적인 공간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비예술의 예술화를 추구했다. 이 같은 전략은 제도권 미학에 대한 반기가 궁극적으로 제도권 안으로 흡수되어버리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비예술적 오브제를 보수적 방식으로 예술화함으로써 예술임을 증명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원래의 오브제에는 예술적 속성이 부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즉, 뒤샹이라는 연금술사가 수많은 소변기 중 하나를 미술관 안에 들여놓음으로써 예술로 화학변화를 일으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앨런 카프로우는 뒤샹의 문제제기를 공유하되, 그 해법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요컨대 카프로우는 <삶으로서의 예술(Art as Life)>이라는 명제 하에 뒤샹이 던진 퍼즐의 해법을 뒤샹과는 다른 방식으로 찾고자 했다. 과연 그는 어떻게 일상의 예술성을 증명하려 했을까?

 

왜 예술화 해야 하는가?

카프로우는 묻는다. “왜 어떤 것을 예술화하길 원해야 하는가?”(Kaprow, <예술일 수 없는 예술>, 1958) 그는 일상의 예술성을 증명하고자 다른 작품이 취하는 전략, 즉, 예술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시공간에 위치시키는 전략을 활용하는 강박을 깨고자 했다. 비예술적 대상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비예술도 곧 예술이 된다. 이는 곧 예술과 비예술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카프로우는 예술이 아닌 예술이라는 모순어법(oxymoron)을 가능하게 하고자 했다.

‘해프닝’과 ‘환경미술’을 통해 그는 모순어법을 극복하고자 했다. 무엇이 최초의 해프닝인가에 대한 논쟁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지만, 카프로우가 1959년 했던 작업, <18 Happenings in 6 Parts>가 최초의 해프닝으로 언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카프로우가 기획한 일종의 퍼포먼스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안점은, 카프로우가 보낸 초대장에 명기되어 있듯이, “여러분이 해프닝의 부분이 될 것이고, 실시간으로 해프닝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에 따라 해프닝은 카프로우라는 예술가의 기획과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게 된다. 해프닝에 참여하는 모든 일반 행위자들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사용했던 ‘즉흥(improvisation)’이 개입하게 되고, 이것이 곧 해프닝이라는 예술적 사건의 범주에 포함된다. 미술관이라는 신성한 화이트 큐브의 벽을 넘어 진행된 그의 해프닝은 일종의 환경미술이라 할 수 있다. 미술관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예술적 경험의 시공간적 특수성을 부각시키는 환경미술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희석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예술을 없애지 않고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아무리 카프로우가 비예술의 예술성을 증명하려 해도 결코 증명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카프로우의 해프닝에 참여한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고, 그 안에서 하는 어떤 행위도 예술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프로우가 조직한 상황과 해프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술적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카프로우의 작업이다. 카프로우의 작업은 미술관을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확장한 것에 불과하며, 카프로우는 해프닝이 일어나는 시공간을 미술관이게끔 하는 실천자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카프로우의 시도는 다시 뒤샹의 딜레마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비예술의 예술성을 증명하는 것은 카프로우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다. 비예술적 행위, 카프로우의 예를 빌자면 이를 닦는 행위도 예술이 되려면, 예술과 비예술 간 경계가 사라져야 한다. 이는 근대 분업화의 과정에서 출현한 순수예술의 장을 파괴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예술장의 울타리로 인해 가능하다. 더욱이 카프로우의 흔적은 모카(MOCA)의 게펜 센터에 전시 중이다. 이는 제도권의 전복이 아닌 제도권으로의 편입이다. 카프로우가 성공하려면 자기부정을 해야만 했다. 이 세상에 예술 따위는 없다고 말이다.

근대 유럽 사회의 분업이화가 합리성의 세속화와 함께 가속되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카프로우의 한계는 한 번 더 발견된다. 아방가르드 정신은 (그것이 어떤 맥락에 사용되는지를 차치하고) 당연시 되는 것에 대한 전복을 토대로 한다. 즉, 아방가르드는 새로운 것에 대한 표방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바로 이 전복과 혁신의 정신이 최종어휘(final vocabulary)이고, 장(field)이 행위자들에게 부과하는 장의 논리이며, 행위자들이 체화하고 있는 아비투스(habitus)이다. 이런 맥락에서, ‘삶으로서 예술’은 전혀 혁신적이거나 새롭지 않고, 카프로우는 누구보다 패러다임에 철저히 헌신한 인물이다. 더 나아가, 이 회의와 전복의 정신은 루이스 코저가 지적했듯이, 비판정신이 꽃을 피운 계몽의 산물이다. 따라서 카프로우는 누구보다도 보수적 모더니스트이자 현대미술가였던 셈이다. 글 민병교 기자

by 아트레이드 | 2008/03/15 21:34 | Preview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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