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01일
'위작판정' 받아낸 최명윤 교수 인터뷰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 진실의 종아 울려라!
3년간의 고군분투 끝에 ‘위작 판정’ 받아낸 최명윤 교수
“어려운 싸움이라고 꼭 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이 그림들이 진짜냐 가짜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짜 문제는 미술계 안에서조차 “이런 유치하기 그지없는, 치밀하지도 않은 사기극”을 그냥 덮어버리려고만 한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미술계 스스로가 ‘위작’을 ‘위작’이라 부를 수 없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는 말인데, 그럼 왜? 이제 막 기지개를 펴며 몸을 뒤틀고 있는 국내 미술시장이 위작바람에 덜컹거릴 것이 걱정돼서란다.
2005년 3월, 서울옥션이 이태성 씨(이중섭의 차남, 일본 거주)가 내놓은 <물고기와 아이>(처음 언론에 작품 공개예정 기사가 실렸을 때는 소장자가 유족이 아닌 지인이었다)를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의뢰했을 때만해도 최 교수를 비롯한 감정위원들은 거리낌 없이 이 작품을 ‘위작’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김용수 한국고서협회 고문이 가지고 있는 3천여 점의 이중섭, 박수근 그림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결국 진위문제가 법정으로까지 가게 되자 모두가 하나 둘 씩 ‘위작시비’에서 손을 놓고 입을 다물어버렸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바로 앞의 일만 걱정하느라 혹은 개인의 신변을 걱정하느라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지 않으려는 미술계의 현실에 최 교수는 할 말이 많단다. “‘진실’을 가려내서 건강한 미술시장을 만들기 위해 3년 동안 쉬지도 않고, 검찰에 압수된 3천여 점의 그림(김용수의 소장품)을 절로 외워가면서까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왔다”는 최 교수에게 이번 사건의 경위와 그간 고군분투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물고기와 아이들>은 무서운 아이들
법적으로도 작품의 진위가 가려졌다. 그래도 여전히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어떤 그림이 위작이라고 의심이 갈 때는 의심되는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심을 제기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국내 미술계의 풍토는 분명히 문제다.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소모됨은 물론 자금의 압박도 있고, 어느 누구도 뒷받침을 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혼자 가져가게 되는 부담이 크다. 이는 한마디로 ‘가짜’라고 말하지 말아라, 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그림 <물고기와 아이>를 위작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예 작정하고 서울옥션을 치기위해 내 개인의 의견을 낸 것이 아니다. 서울옥션이 공식적으로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감정을 의뢰했고, 당시 감정위원에 포함되어 있던 나는 감정대상물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뿐이다. 이후 서울옥션이 이태성이 가지고 있다는 이중섭의 작품 7점 중 3점에 대한 재감정을 요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법적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이러면 누가 어떻게 위작을 위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이 일로 한 원로 평론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예민한 일에는 끼어드는 게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말하더라. 한 마디로 다치는 게 싫다는 말 아닌가. 이번 사건을 진행해 오면서 혼자 싸워야하는 게 외롭고 힘들기도 했지만 위작을 밝히고자 한 내가 화랑계의 공적이 되어 버린 현실이 더 안타깝다.
이번 사건은 서울옥션이 감정협회에 의뢰했던 이중섭의 그림 4점을 위작으로 판정하면서 불거졌다. 그렇다. 2005년 3월, 감정협회는 서울옥션이 감정을 의뢰한 이중섭의 작품 4점을 모두 위작으로 판정했다. 그러자 3월 22일 불쑥 이태성이 한국을 방문해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태성은 감정협회가 위작으로 판정한 작품은 유족이 50년간 가지고 있던 진품이라며 감정협회의 감정결과를 부정하고, 한국 감정 능력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감정협회는 내부회의를 거쳐 4월 12일 세미나를 통해 위작 판정 경위를 공개하기로 결정했고, 이 자리에 이중섭의 유족과 서울옥션, 이중섭예술진흥회 등을 초청했다. 당시 나는 위작으로 판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과학적인 감정을 실시했다. 먼저 서명이나 사인 등을 분석하는 서체분석을 실시했고, 도상분석을 거쳐 위작임을 제시했다. 그림이 없어 재료 분석은 하지 못했다. 당시 상대측에 문제가 됐던 그림을 잠시 보내준다면 X선형광분석기를 사용해서 재료의 문제점도 제시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
세미나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상대측 모두가 불참을 통보했다. 대신 세미나 이틀 전인 4월 10일 서울옥션은 몇몇 신문사를 대동하고 일본을 방문했다. 그 신문들은 이중섭의 부인인 마사꼬 여사에게 문제가 됐던(김용수가 건네준 그림) 그림을 들게 하고 사진을 찍은 후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진품이라는 주장을 실은 기사와 함께 내보내 일반에게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내주었던 비공개된 그림들을 유족이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서울옥션이 공개한 문제가 된 그림들도 비공개로 유족이 소장하고 있던 진짜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들의 불참 소식과 마사코의 인터뷰 기사를 유도한 몇 몇 기자들은 내게 전화해서 감정협회만 참석하는 반쪽짜리 세미나를 뭣 하러 진행 하냐며 세미나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쪽짜리건 4분의 1짜리건 이 세미나는 이태성이 의뢰하고, 서울옥션이 판매한 그림들이 위작이라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일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세미나를 강행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던 그림들을 가짜라고 발표한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피의자가 아닌 건 검찰도 알아
위작 진위여부가 법정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위작 판정에 세미나까지 진행되자 서울옥션의 도움 받아 이태성은 4월 22일에 귀국하여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태성이 일본에서 직접 건너와 아버지로부터 직접 받아 비공개로 50년간 소장했다는 이중섭의 또 다른 유품 20여 점을 공개했다. 그 중 그림이 16점정도 됐다. 그런데 거기서 덜미를 잡힌 것이다. 3월 20일 경 SBS가 이중섭 작품 200여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김용수와 이중섭50주기 비공개작전시준비추진위)과 이중섭에 대한 대대적인 기획전과 다큐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작품 좀 감정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당시 원화 대신 컴퓨터 화상을 본 것이었지만 그림이 너무 조잡해서 굳이 원화를 보지 않아도 위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이태성이 간담회에 가지고 나온 그림 속에 김용수가 가지고 있던 조악한 작품이 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연구소에 있던 조교에게 연락해 이미지를 출력해서 가져오라고 말했고, 간담회에서 직접 김용수의 그림을 공개하며 이태성의 거짓말을 꼬집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다음날 어떤 매체에서도 이 일을 다루지 않더라. 오히려 유족의 입장만 실린 기사만 수두룩하게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틀 후인 4월 25일, 이중섭 유족과 이중섭예술진흥회는 나를 민, 형사의 책임을 물어 고소했다. 의심스러운 것은 이태성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 텐데, 더군다나 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을 텐데, 어떻게 이틀 만에 고소장을 써서 나를 고소할 수 있냐는 것이다. 분명 이태성 뒤에 숨어서 그를 도와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 아닌가? 이 일이 있고 며칠 후에는 김용수가 이중섭의 작품 450여 점과 박수근의 작품 200여 점을 더 가지고 있다는 발언을 해 이슈가 됐고, 자신은 이태성에게 그림을 준 적이 없는데 주었다고 하여 본인의 명예가 훼손되고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해 SBS와의 전시기획이 취소되었다고 업무방해죄로 나를 고소했다. 졸지에 두 사람으로부터 각각 2건씩 민형사상으로 고소되어 4사건의 피의자가 된 것이다.
SBS 취재진과 동행하여 이태성을 만나러 일본에도 갔었다고. 3일 동안 이태성의 액자가게 대문만 구경하다 왔다. 이태성은 내가 가게 안으로 한 발짝만 들여놓아도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TV에도 나왔듯이 취재 마지막에 “한국 피가 흐르고 있지만 나는 일본인이고, 일본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은 통역이 몰래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서 찍은 장면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러 갔던 건가. 당신의 아버지를 두 번 죽이게 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이 사건 때문에 대한민국 미술계가 진창이 되어 간다고, 당신 하나만 정신 차리면 된다고, 뭐 이런 얘기들을 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에 소환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위작 입증을 시작했다고. 아마도 세 번째 소환 날부터 검사들이 나에 대한 호칭을 피의자에서 교수님으로 고쳐 불렀다. 물론 반말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검찰에서도 그 때 이미 문제가 된 그림들이 가짜라고 판단됐던 모양이다. 아무튼 5월 10일부터 검찰에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아예 내 사무실을 검찰에 옮겨 놓은 것처럼 그 안에서 위작 입증 작업을 밤낮으로 진행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300회도 넘게 검찰청에 출입했다.
주객이 전도됐다. 미술품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법으로만 해결 될 수는 없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미술품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도 없다. 현재 ‘미술과학감정’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어 있는데, 법은 사건대상물의 명확한 증거를 위주로 판정한다. 즉 미술품을 법과학적으로 입증하여야만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의 발달로 물질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해석 할 과학도는 많이 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물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미술품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해석된 과학적 근거를 미술품과 연결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있는 것이다. 검찰은 김용수 소장 압수품 3,000여점의 진위판정의 주체를 선정하는데 무척 고심하였던 것으로 안다. 김용수와 이태성으로부터 고소를 당하였던 직접 당사자인 내가 진위판정의 주체가 되는 것에 상당한 문제점을 제기하였고 법적으로 막으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모든 법적검토 끝에 피의자였던 나에게 압수그림의 실체규명을 의뢰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동안 내가 미술과 과학을 접목하고자 연구하였던 유일한 사람으로 선택에 여지가 없었던 것이 주객이 전도된 원인일 것이다.
그림 3천여 점 내용부터 증거 번호까지 모조리 외워
어떤 점이 어려웠나. 검찰은 10월쯤 처음 문제가 됐던 이태성의 그림 8점과 김용수가 제출한 30여 점의 작품이 ‘위작으로 의심된다’고 발표했고, 나(감정협회)를 ‘혐의없음’으로 판결했다. 그리고는 김용수의 집에서 압수한 3천여 점의 작품을 또 다시 나에게 의뢰했다. 검찰은 위작이라고 판명된 40여 점의 작품 때문에 3천여 점의 작품 모두를 위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이는 참 비열하게도 나에게 작품 전체를 검증해내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 3천여 점이 위작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량이 많을 뿐 아니라 단기간 내에 위작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압수된 김용수의 작품을 사진으로 자료화 작업에 2달이나 걸렸었다. 이 같은 사실은 작품을 압수당한 김용수도 알고 있고 이 사건과 관련된 이태성이나 서울옥션도 모두 아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 3천여 점의 그림 모두를 감정한 뒤 과학적으로 위작이라고 입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위작임을 입증 해내지 않았나. 그렇다. 오기가 발동하였다. 나에게는 나를 믿고 따라준 13명의 대학원 제자들이 함께 있어줬다. 아마도 학생들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들 새벽에 모여서 그림들을 늘어놓고 오늘 몇 장정도 감정할 수 있을까 의논한 뒤, 하루 종일 그 일에만 매달렸다. 감정을 하다 보니 작품마다 동일한 패턴이 보였고, 그 패턴을 묶어 같이 조사하다보니 감정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꼬박 1년을 보내니 전체 작품이 위작임을 증명할 수 있었고, 3천점 중 2천500여 점의 작품이 한 사람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또 그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외워버려서 법정에서는 정작 증거 번호만 듣고도 그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이 법원에서 가짜로 판명되지 않으면, 진짜다 가짜다를 떠나 그냥 그 작품을 소장자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그럼 어느 누가 마음 놓고 그림을 사고 팔 수 있겠나.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분명 김용수의 그림도 위작으로 판명되지 않았을 것이고,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전국으로 유통됐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미술계에 만연된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싶었다.
검찰에서도 김용수 고문의 그림들을 위작으로 판명했지만, 정작 위조범은 가려지지 않았다. 위작이라고 하려면 위조범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속설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보면 위조지폐가 발견되면 위조지폐로 판정될 뿐이다. 내가 범인을 쫓아가서 위조범을 잡아야 그것이 위조지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위조범을 잡던 말던 위폐는 위폐일 뿐이다. 위조지폐의 판정과 위조범의 수사는 전혀 다른 상황이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위작은 위작이다. 그림은 그 자체가 얘기할 뿐이다. 위조범이 없다고 위작이 진품이 된다는 이런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여기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고 있나.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위조범은 잡히지 않고 있다. 현재 김용수는 3,000여점의 그림 중 이중섭의 그림은 1972년 박수근의 그림은1975년 인사동의 고서점에서 각각 한 묶음으로 구입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섭의 그림에서는 1984년에 처음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안료가 이용된 그림이 수백 점에 이르고 있으며,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1984년에 개발된 물감 이외에도 2000년 태안의 한 가정집에서 파지로 팔은 학생의 그림에 ‘수근’ 서명이 삽입된 그림까지 발견되고 있다. 즉 이 그림들은 김용수가 2000년 이후에 수집하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2000년도에는 이중섭과 박수근이 누구인지 모르는 수집가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김용수는 본인이 그림을 산 단 한 사람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만약 그림의 구입자금과 구입처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용수 자신이 이 사기사건에 직접 관여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3월 10일 최종판결인가. 원래는 2월이면 재판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김용수의 변호사가 중간에 생각을 바꿔서 나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 계속 시간을 미루고 있다. 3월 10일은 김용수의 변호사가 나를 증인 심문하는 마지막 시한이다. 이날 나 역시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던 모든 것을 밝히고 엄중한 문책을 법정에서 강력하게 요구할 예정이다.
위작임을 확신하면서도 맞고소를 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했다면 지금보다 더 힘들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이번 사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편을 그림의 가짜라고 공표한 것에 대해 그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들의 정체를 밝혀 박수근과 이중섭선생의 위치를 지켜드리고자 노력을 할뿐이다.
다 같이 정신 차리자!
요즘은 그래도 미술인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 화상이 아닌 전업 작가들이다. 아마도 모금운동을 하면 상당한 돈을 지원해 주겠다는 사람도 알고 있다. 지금 미술계가 여러 문제들로 술렁대고 있는데 함께 자정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똑같은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터질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국제미술과학연구소가 재료학에 부분을, 미술사가들이 인문학적인 부분을, 작가들이 도상 특징 및 판독 부분 등을 보다 심도있게 연구하여 새로운 미술과학감정방법론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또 뜨거운 감지로 부상된 <빨래터> 경우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가 서울옥션의 의뢰를 받아 진품으로 감정의견을 내 놓았으나 감정위원선정, 감정방법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이 문제시되고 있다. 더 이상 상인들의 안목만으로 미술품의 진위가 판정되는 전 근대적인 감정방법은 변화되어야 한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감정결과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미술인이 나설 때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전문인들로 재구성된 감정위원회가 미술과학적 방법으로 재감정을 하여 <빨래터>의 실상을 규명하여야만 된다.
‘미술과학’이라는 말을 2007년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어떤 감정방법인가. 3가지의 방법론이 결합된 상태의 감정방법론이다. 첫째는 인문학적 접근이고, 둘째는 도상분석, 셋째는 재료분석의 결과를 혼합하는 방법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정립하고 싶은 것은 후배들이 ‘미술과학’으로 작품을 볼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가령 재료분석에 경우 물감의 시료화, 캔버스의 변화, 고정 못의 변화 등 재료를 시대적 특징으로 분류하고 자료화시키고 있다. 현재 물감 시료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고정 못의 경우 1919년부터 현재의 못을 수집해 놓은 상태다. 이러한 자료의 수집과 체계화는 우리나라 근대미술품의 재료변화에 대한 기준자료의 밑바탕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미술작품은 작가의 표현형식 이외에도 수많은 정보를 함유하고 있다. 이 많은 정보를 어떻게 체계화하여 정량화하느냐가 숙제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정보를 활용하면 자연스럽게 작품의 감정능력도 갖추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해나가는 것이 화상들의 눈에는 본인들의 고유영역인 감정업무가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 <빨래터>의 감정결과를 발표하면서 과학으로서는 작품의 진위를 밝힐 수 없다든가 진위감정의 우선은 안목이라고 강변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 안스러운 생각마저 든다. 미술과학연구소는 여러 분야에서 작품을 연구할 수 있는 기준을 자료화를 하겠다는 것이지, 감정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 미술과학연구소는 법인 설립만 한 상태다. 올해 1월 18일에 법인 설립을 하고 인가증을 받아왔다. 공교롭게도 감정협회가 <빨래터>를 진품으로 판정하면서 과학감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우리의 능력으로는 <빨래터>를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고 발표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2007년 1월 제대로 된 감정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한국화랑협회와 한국감정협회가 감정 업무를 통합하고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가 행정 업무를 주관하는 기구로 하여 출발하면서 처음으로 기자들에게 한 말이 ‘과학적으로 무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두 단체가 합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무조건 팔아 놓고 위작으로 판정되면 ‘몰랐다, 진품인줄 알았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법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았으니 ‘죄가 없다’고 뻔뻔스럽게 인사동을 활보하는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화상이면 화상답게 전문인으로서 작품의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초등학생도 알아 볼 허접스런 그림을 작품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고 ‘몰랐다’고 하려면 미술계를 떠났으면 한다. 인터뷰 태윤미 기자 (<아트레이드> 5호)
# by | 2008/03/01 20:40 | Hot Issue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