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01일
<예술과 자본>전_2008.2.1~2.20_대안공간 루프
예술과 자본, 그 오묘한 관계에 대하여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 이 글을 읽는 여성 독자분은 무엇입니까? 잡코리아와 지식포털 비즈몬에서 직장인 768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1위는 시계, 반지,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37.4%)가 차지했다. 예상에서 그다지 빗나가지 않는 결과이다. 그런데 간발의 차이로 1위를 놓친 2위는 필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무려 35.1%의 응답자가 ‘현금’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모든 가치가 ‘금전적 가치(monetary value)’로 환산되어 버리는 자본주의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남녀 간의 사랑까지도 말이다. 하긴 1950년대에 이미 교환이론에 입각해있던 한 미국사회학자는 남녀 간의 결혼은 여성의 처녀성과 남성의 경제력 간의 교환관계로 파악했다.
이는 오늘날 미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미술시장의 열기 속에 어느새 미술작품은 투자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작가를 평가하는데 있어 어떤 비평적 평가보다도 단 한 번의 경매낙찰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대안공간 루프는 이와 같은 시국을 성찰하고 고민하는 <예술과 자본>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는 과연 어떻게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조망하는 것일까?
대안공간과 자본?
루프는 대안공간이다. 풍기는 냄새가 자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 전시 기획자를 볼까? 루프 디렉터 서진석,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전영백, 그리고 루프 큐레이터 김수현. 누구 하나 시장과 밀접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이들이 대안공간에 무슨 꿍꿍이로 모여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말하겠다는 걸까?
전시는 예술과 자본의 발전적 관계 형성의 가능성, 예술이 자본으로부터 피해 받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대안 모색, 서구미술계가 주도해오던 예술과 자본의 공유시스템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이 중 두 번째, 즉, 예술이 자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대안 모색이라는 목적이 눈에 띤다. 도대체 예술이 자본으로부터 어떤 피해를 받았다는 것인가? 서진석 디렉터는 “1980년대 이후 미술에 투자개념이 도입되며, 미술작품을 투자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예술적 평가와 상업적 평가 사이에 괴리가 점점 넓어졌고, 작가는 시장의 요구에 따라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덧붙인다. 요컨대 자본의 논리가 미술계에 침투해 미술계를 잠식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작가와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문화를 형성해야 할 컬렉터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전시는 예술이 자본에 의해 소외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시장에 의한 지배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전시라. 이 정도면 대안공간과 어울릴 법도 하다. 이것으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도 든다. 잠깐 이는 뒤로 하고 전시를 둘러볼까 한다.
자본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전시로
예술과 자본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 이미지를 제시한다는 첫 번째 목적부터 살펴보자. 전시에는 락스미디어(Raqs media 인도), 안테나(Antenna 일본), 히로시 후지(일본). 샤오 유(Xiao Yu 중국), 리크릿 트라반자(Rikrit Tiravanija 태국), 플라잉시티(한국), 이동기(한국), 이중근(한국) 등의 다국적 작가들이 참여한다. 이 중 트라반자, 락스미디어, 플라잉시티 등은 자본주의의 이중성과 그것이 사회와 예술에 주는 폐해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선다. 이에 반해 안테나, 히로시 후지, 샤오 유, 이중근, 이동기 등은 예술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나름의 문제제기를 하거나 정의를 시도하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렇게 전시는 무조건 자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담고자 시도하고 있어, 관객의 감상하는 즐거움을 배려한다. 이로 전시는 자본이 문제라 말하기 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본이 뭘까’를 생각하게끔 한다.
아직은 미흡한, 그러나 의미 있는
이렇게 전시는 다소 개방적 형태로 진행되나, 자본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특히 2월 1일 진행되는 세미나에서는 예술과 자본이 전도되는 현상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경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전시는 예술이 자본에 의해 소외되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할 뿐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는 괄호치기를 하고 관객의 몫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소외 현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낳는 결과가 문제이다. 즉, 미술에 예술적 가치가 사라지고 상업적 가치만이 남는다면, 미술시장이 붕괴함과 동시에 미술은 그 존재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정당성 위기(legitimacy crisis)’에 처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위기가 도래해 예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면 그것은 왜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예술이 없다고 인류가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 없는 사회를 꿈꿀 수 없다고? 예술이 있다는 것을 꿈꿀 수 없는 사회도 있었다. 전시는 이에 어떤 답변을 준비하고 있을까? 전시는, 애초에 서로 분리 불가능한 예술과 자본, 그 오묘한 관계의 실타래를 이제 풀고자 한다.
서진석 디렉터 인터뷰
예술이 자본으로부터 어떤 피해를 받았다고 보는가? 1980년대부터 미술이 투자수단이 됐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모든 영역에서 자본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지금 미술의 순환구조는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민주화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시아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경제 시스템의 민주화가 가능한가? 불가능하지만,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갖고 더 잘 살 수 있는 이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노력이 미술계에는 없었나? 적어도 예술적 가치가 돈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는 없었다고 본다. 작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작가가 자본에 잠식되면, 착각하기 시작하고 작업이 나빠진다. 잘 팔리면 자신이 좋은 작가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를 부추기는 일부 화랑들이 있다. 예술의 장과 시장 간 확실한 자율성을 갖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나? 딜러, 큐레이터, 컬렉터, 비평가 간 분업과 협업이 잘 이뤄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대안이 될 것 같다. 전시작들 간에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처음에는 자본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작품들로 작품을 선정했다. 그랬더니 너무 획일적이어서, 영역을 확대했다. 루프에서 예술과 자본을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가? 루프는 대안공간이다. 대안공간에서 이런 비판적 기획을 할 수 있지 않겠나.
# by | 2008/02/01 20:25 | Preview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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