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된 미술품 수집을 해보자



미친 전작(全作) 수집의 추억


원로 미술평론가 박용숙은 한때 소설가였다. 그것도 주목받는 소설가였다. 그러던 그가 소설을 접었다. 1969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이 당선되면서부터였다. 소설가로서 그의 글발은 미술평론과 미술이론서에서 빛났다.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미술이론을 명쾌한 비유와 유려한 글쓰기로 쉽게 풀어냈다. 예비작가로서 캔버스와 씨름하던 내가 미술이론에 깊숙이 진입하게 된 것은 박용숙의 힘이 컸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가 쓴 글과 책, 그리고 번역서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그의 미술 관련서들을 구입하는 한편 도서관에서는 그가 미술잡지에 쓴 평론들을 복사했다. 대구와 부산 등지의 헌책방까지 뒤지고 다녔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서 박용숙의 소설집을 발견했다. 『우리들의 초상』. 『순례자』 같은, 약력에서만 접하던 소설집을 실제로 만난 것이다. 소설집도 여러 권 있었다. 장편소설은 물론 대하장편소설도 있었다. 모두 헐값에 샀다. 잊혀진 소설가의 옛날 소설을 찾는 독자는 없었다. 나는 횡재한 기분으로 소설집을 읽어치웠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장·단편의 소설 중에는 미술이론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 많았다는 점이다. 의욕만 앞선 미대 초년생에게 생소한 미술 개념들이, 그의 소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해되곤 했다.


한편으론 그가 쓴 현대미술 평론집과 이론서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의 기원』,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 같은 한국미술사 연구서들도 읽었다. 그가 말하는 개념이 머릿속에 뚜렷이 그려졌다. 한동안 나는 ‘박용숙표’ 시각으로 한국미술사를 보곤 했다.


나는 또 그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다른 책들까지 찾아 읽었다. 그렇게 독서의 폭이 확장되었다. 책꽂이에는 박용숙의 책(소설, 평론집, 번역서, 한국미술연구서)과 그가 인용한 각종 책이 늘어갔다. 훗날 ‘미술잡지 밥’을 먹으면서 박용숙 선생께 원고를 청탁하는 영광을 누렸고, 나중에는 직접 뵙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한 저자에 대한 매혹이 마음은 물론 미술을 보는 눈까지 밝혀주었다.


특화된 컬렉션으로 투자의 뒷심 키우기


가장 이상적인 미술품 수집은 어떤 것일까? 순수하게 미술이 좋아서 수집하는 것이다. 순수 컬렉터들이라 할 이들은 미술품을 관람하는 ‘아이쇼핑’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작품을 수집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 세계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달리 컬렉터의 취향이 만든 또 하나의 미술세계다. 사진, 회화, 조각, 비디오 아트, 판화 등의 장르별, 작가별로 다양한 작품이 컬렉터의 취향에 따라 특별한 세계를 연출한다.


미술사가가 쓰는 미술사가 있다면, 컬렉터들이 작품 수집으로 빚는 또 하나의 미술사가 있을 수 있다. 특화된 작품으로 구성된 이 세계는 사실 작품을 통해 드러난 컬렉터의 내면풍경이기도 하다. 각 작품에는 작품에 대한 느낌,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 등 컬렉터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감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 컬렉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 『화골』의 저자(김동화)는 자신이 소장한 드로잉 작품만으로 한국 현대미술사를 썼다. 작가들 이야기와 작품 수집과정의 에피소드, 품평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때로는 전문가를 주눅 들게 할 만큼 작품을 보는 눈이 맵다.


예컨대 박수근의 초가집 풍경(「초가」)에 관한 글이 그렇다. 작품의 조형미를 읽어내는 광경이 압권이다. 저자는 그림 속에서 초가집의 위치와 초가집 앞의 빈 공간(마당), 그리고 화면 가장자리의 기재된 작가사인을 주목한다. 그러면서 초가집과 사인의 역학관계를 통해 빈 공간에 담긴 팽팽한 기운을 찾아낸다. 무심히 봐 넘길 수 있는 초가집 앞의 빈 공간이 저자에 의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비로소 인지된다. 이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으면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점이다.


초보자로서 미술품 투자를 염두에 둔다면, 특화된 컬렉션을 해보는 것도 좋다. 특정 화가의 작품이나 특정 장르, 주제, 소재의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집하는 재미도 있고, 컬렉션의 질도 높아진다. 어렵지 않다. 드로잉이면 드로잉, 작가들의 수채화면 수채화 식으로 수집하면 된다. 특화된 컬렉션은 초보자가 실천해볼 만한, 의미 있는 컬렉션 방식이다. 한 우물을 깊고 넓게 파면, 덤으로 미술 전반을 보는 안목까지 얻을 수 있다.


미술품 투자는 단순히 공산품에 투자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시적인 작품에 담긴 보이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작품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필수다. 애정이 있으면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또 자신이 투자한 작품을 매매할 때도 자신감이 붙는다. 자신감은 풍부한 정보에서도 생기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에서 더 깊어진다. 미술품 투자에는 장기적인 안목이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해서 투자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미술을 사랑하는 미술품 투자


나는 저자의 글을 읽다가 그의 저서를 대부분 찾아 읽고, 그가 언급한 관련서들까지 섭렵한 경우다. 그러면서 책 읽는 즐거움을 누렸고, 다른 분야의 책들까지 폭넓게 찾아 읽었다. 미술품 투자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한 작가의 작품이나 특정 장르의 작품에 관심을 집중하다보면, 미술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작가나 미술계 전반으로 안목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단순한 투자자로 머물게 하지 않고, ‘미술애호가인 투자자’로 거듭나게 한다. 또 애정을 가진 만큼 투자에도 신중하게 만든다. 진정한 미술품 투자는 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아트북스 정민영 대표

by 아트레이드 | 2008/04/17 17:16 | [Art Market]미술품투자가이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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