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레이드 vs 서울옥션 ‘빨래터’ 진위공방2탄

투명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빨래터’ 감정

 

아트레이드 창간호는 지난 5월 서울옥션에서 대한민국 미술경매 최고가(45억2,000만원)로 낙찰된 박수근 미공개작 <빨래터> 짝퉁 의혹 기사를 게재했다. 서울옥션은 짝퉁 의혹을 받고 있는 <빨래터>를 한미감(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 재감정을 의뢰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지난 1월 4일 ‘감정유보’와 9일 ‘진품소견’을 발표했다.

서울옥션은 한미감의 진품소견서로 지난 1월 23일 법무법인 바른을 통해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30억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지난 2008년 2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채권가압류가 그리고 2월 5일 소장이 아트레이드로 특별송달 되었다.

원고의 소장은 2008년 1월 9일 한미감의 ‘진품’ 판정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다. 하지만 원고는 구체적인 근거 없이 이 사건 작품을 진품이라고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1) 원고가 공정성을 상실한 한미감에 재감정을 의뢰한 점, 2) 원고가 한미감의 1차 감정결과를 묵인한 점, 3) 원고는 재감정을 의뢰한 한미감의 감정위원단에 원고의 자체 감정위원들이 참석한 일을 묵인한 점, 4) 원고가 편파감정을 통한 감정결과만을 주장하고 있는 점, 5) 원고가 이 사건 기사를 비하한 점 등을 살펴보면, 원고는 악의적으로 이 사건 기사를 비하하여 이 사건 작품을 공정하게 감정하겠다는 입장이 아니란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아트레이드는 부당한 원고의 채권가압류와 소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빨래터> 종이에 연필. 18.8x26cm

‘1934’는 1934와 1954 모두로 읽힐 수 있다?

(주)서울옥션의 소장에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밝혀지지 않은 두 가지 사항이 기술되어 있다. 하나는 제106회 서울옥션 경매도록에 미공개작 ‘빨래터’의 비교사례로 실린 드로잉 ‘빨래터’이고, 다른 하나는 아트레이드가 비교사례로 누락된 것으로 지적했던 시공사 <<박수근>> 작품집에 실린 박수근의 1950년대 후반 ‘빨래터’이다. 따라서 우선 그 두 가지 사항을 인용하고 그것에 대해 반박해 보겠다.

“드로잉 <빨래터>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피고들은 위 드로잉이 ‘1934. 2. 27’에 그려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위 그림1을 보면, 드로잉 <빨래터>에 쓰인 글씨는 ‘1934년’과 ‘1954년’ 모두로 읽힐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고는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들이 모두 50년대 중후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점에 근거하여 1954년도에 그려진 것으로 표시하였습니다(한편, 원고는 위 드로잉 <빨래터>를 소장하고 있는 홍익대학교 박물관에 위 사안에 관하여 문의하였으나, 박물관 측 또한 언제 그려진 것인지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하였습니다). 피고는 드로잉 <빨래터>가 1934년 작품이라고 단정적으로 밝힌 후, 원고가 아마 실수로 제작년도를 오기한 것 같다면서 원고의 전문성에 대하여 명예와 신용을 훼손한 후, ‘1934년에 그린 드로잉이 20여년이 지난 1950년대 후반에 유화로 그려졌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이 사건 작품이 위작이라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은 이 사건의 작품이나, 드로잉 작품이외에도 3개의 작품이 확인되고 있고 이들의 제작년도는 모두 1950년대 중후반입니다. 따라서, 피고들의 주장과 같이 드로잉 <빨래터>가 1934년 작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가 이 사건 작품이 위작이라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이 사건 작품만이 드로잉을 그린 후 20여년 이후에서야 유화로 그려졌고, 그 점이 매우 수상하다는 취지로 기술하여 원고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드로잉 작품 <빨래터>를 보시지요. 정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제작년도는 ‘1934’로 읽혀질 것이다. 하지만 원고는 위 드로잉에 쓰여진 제작년도를 ‘1934년’과 ‘1954년’ 모두로 읽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숫자 ‘3’이 숫자 ‘5’로도 읽혀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이다. 따라서 “아마 실수로 제작년도를 오기한 것 같다”고 필자는 진술했던 것이다.

원고는 눈으로 읽혀지는 숫자보다는 ‘빨래터’ 그림들이 제작된 년도 - “원고는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들이 모두 50년대 중후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점에 근거하여 1954년도에 그려진 것으로 표시하였습니다.” - 에 비중을 두었다. 원고는 괄호를 빌려 “위 드로잉 <빨래터>를 소장하고 있는 홍익대학교 박물관에 위 사안에 관하여 문의하였으나, 박물관 측 또한 언제 그려진 것인지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하였”다는 사례를 들어 원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졸지에 홍익대학교 박물관 관계자도 ‘심봉사’로 출현한다.

만약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려면 박수근의 ‘빨래터’ 그림들이 모두 ‘50’년대 중후반 작품이면서 동시에 ‘30’년대 중후반 작품으로도 읽혀져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숫자 ‘5’가 숫자 ‘3’으로도 읽혀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고는 숫자 ‘3’이 ‘5’로도 읽혀질 수 있는 반면, 숫자 ‘5’가 숫자 ‘3’으로는 절대 읽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1934. 2. 27’이라는 제작년도를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드로잉에 쓰여진 제작년도를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군다나 홍익대학교 박물관은 ‘1934. 2. 27’이라는 제작년도가 쓰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로 제작년도를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사건 기사는 드로잉의 제작년도를 기점으로 다른 <빨래터> 유화작품을 비교하여 “1934년에 그린 드로잉이 20여년이 지난 1950년대 후반에 유화로 그려졌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흥미롭게도 그 점은 원고의 진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고는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들이 모두 50년대 중후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점에 근거하여 1954년도에 그려진 것으로 표시하였습니다”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위_<빨래터> 박수근. 캔버스에 유채. 111.5x50.5cm. 1950년대 후반. <<박수근 작품집>>(시공사. 1995)
중간_미공개작 <빨래터> 캔버스에 유채. 37x72cm. 1955년 말-1956년 초

아래_<빨래터> 박수근. 캔버스에 유채. 15x31cm. 1954년. <<박수근>>(삼성미술관, 1999)
* 미공개작 ‘빨래터’ 소장자인 존 릭은 박수근으로부터 1955년 말에서 1956년 초 사이에 이 사건 작품을 직접 받았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이 사건 작품은 1955년 말에서 1956년 사이에 제작된 셈이다. 한미감의 확대감정 결과, 이 사건 작품은 “박수근만의 양식이 완성되기 이전 모색기의 작품으로서 마티에르가 일정치 않다”고 판정했다. 제106회 서울옥션 경매도록에 박수근의 1954년작 ‘빨래터’가 비교사례로 제공되어 있다. 이 사건 작품은 “마티에르가 일정치 않다”고 했는데, 그 그림보다 적어도 1년 전에 제작된 1954년작 ‘빨래터’는 박수근의 트레이드마크로 간주되는 마티에르가 일정하다. 따라서 1954년작 <빨래터>에서 1950년대 후반 시공사 <빨래터>는 문맥을 이루는 반면, 그 두 작품 사이에 서울옥션 <빨래터>가 위치하면 문맥이 단절된다.

원고는 “1934년에 그린 드로잉이 20여년이 지난 1950년대 후반에 유화로 그려졌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는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들이 모두 50년대 중후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점에 근거하여 1954년도에 그려진 것으로 표시”하였다고 말이다. 따라서 “1934년에 그린 드로잉이 20여년이 지난 1950년대 후반에 유화로 그려졌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이 사건 기사의 의혹을 원고가 “이 사건 작품이 위작이라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고 진술함으로써 원고의 주장을 뒤집고 있는 셈이다. 결국 원고는 스스로 “원고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원고는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은 이 사건의 작품이나, 드로잉 작품 이외에도 3개의 작품이 확인되고 있고 이들의 제작년도는 모두 1950년대 중후반"이라고 진술했다.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은 원고가 진술했듯이 이 사건 작품과 앞에서 언급했던 드로잉 작품 이외에 3점의 작품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제106회 서울옥션 경매도록에 '3'점이 아니라 '2'점만 게재했다. 근데 (주)서울옥션이 배제한 나머지 한 점이 지난 2007년 5월 22일 (주)서울옥션 경매를 통해 판매된 이 사건의 작품과 가장 닮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사건 기사는 바로 그 점에 대해서도 의혹 제기를 했다.

시공사 ‘빨래터’, 몰랐다/알았다?

“피고들은 이 사건 작품과 시공사 도록에 실린 <빨래터>(이하 ‘시공사 도록 작품’이라고 합니다)를 비교하면서 이 사건의 작품이 원작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이유를 대고 있을 뿐 이 사건 작품이 위작이라는 주장에 합당한 근거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피고들은 더 나아가, 원고가 경매 도록에 시공사 도록 작품을 실지 않은 것에 대하여 “비교사례로 그와 유사한 <빨래터> 그림들과 드로잉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공개작 <빨래터>와 가장 비슷한 시공사 <빨래터>를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기술하여 마치 원고가 이 사건 작품이 위작임을 감추기 위해 시공사 도록 작품을 고의적으로 경매 도록의 참고 작품에 실지 않은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 원고가 이 사건 작품의 경매 도록에 참고 도판으로 시공사 도록 작품을 실지 않은 이유는 위 작품이 2002년 4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원고와 가나아트센터와의 관계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배제하기 위해서 경매 도록에 실지 않은 것이고,2) 게다가 이 사건 작품의 경매 도록에는 드로잉 빨래터를 포함하여 1954년 및 1950년대 후반 작품 등 총 3점의 빨래터 작품을 참고 도판으로 실었기 때문에 굳이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되었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시공사 도록 작품을 실지 않은 것입니다(갑제6호증의 1, 2 참조).”

이 사건 기사는 이 사건 작품과 시공사 도록에 실린 <빨래터>를 비교분석했다. 시공사 도록 작품은 이미 국내 미술계에 잘 알려진 유명한 작품인 반면, 이 사건 작품은 (주)서울옥션이 밝혔듯이 ‘미공개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시공사 도록 작품을 피고가 “원작으로 주장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또한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이유를 대고 있을 뿐”이라고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주장만 하고 있다. 이 사건 기사는 시공사 도록 작품과 이 사건 작품을 비교분석하면서 의혹제기를 한 것이지 “이 사건 작품이 위작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원고는 “합당한 근거”도 없이 이 사건 기사를 오독하고 있다.

제106회 서울옥션 도록에는 4점의 ‘빨래터’ 그림들이 게재되어 있다. 이 사건 작품과 드로잉 ‘빨래터’ 그리고 1954년작 <빨래터> 또한 행방불명의 1950년대 후반 ‘빨래터’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작품과 형태와 구도가 비슷한 시공사 도록 작품은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았다. 이 사건 기사는 그 의문점에 관해 2가지 답변 - “1. 시공사 <빨래터>를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서울옥션의 전문성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서울옥션의 무능을 반증한다고 말이다. 2. 알고 있었지만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았다. 비교사례로 그와 유사한 <빨래터> 그림들과 드로잉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공개작 <빨래터>와 가장 비슷한 시공사 <빨래터>를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을 추론해 보았다.

(주)서울옥션은 2007년 12월 31일 중앙일보 기사 인터뷰에서 시공사 도록 작품을 비교사례로 도록에 제공하지 않은 이유로 전자, 즉 시공사 도록 작품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서울옥션 측 왈, “‘담당자가 몰랐다. 그리고 다른 참고 작품을 여러 점 싣지 않았느냐’고 해명했다.” 하지만 원고의 소장에는 이 사건 작품의 경매 도록에 참고 도판으로 시공사 도록 작품을 실지 않은 이유를, 이 사건 작품이 “2002년 4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원고와 가나아트센터와의 관계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배제하기 위해서 경매 도록에 실지 않은 것이고, 게다가 이 사건 작품의 경매 도록에는 드로잉 빨래터를 포함하여 1954년 및 1950년대 후반 작품 등 총 3점의 빨래터 작품을 참고 도판으로 실었기 때문에 굳이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되었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시공사 도록 작품을 실지 않은 것”이라고 진술을 바꾸었다.

만약 이 사건 작품이 “2002년 4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제106회 경매 도록에 싣지 않았다면, 제106회 도록에 실린 박수근의 1954년작 ‘빨래터’는 2005년 박수근 미술관에 전시되었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 원고는 이 사건 작품을 제106회 경매 도록에 실리지 않은 또 다른 이유로 “원고와 가나아트센터와의 관계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배제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원고는 그 진술에 대해 각주를 빌려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았다.

“원고는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작품을 도록에 실을 경우, 가나아트센터의 위해 다른 작품도 많은데 일부러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작품을 도록에 싣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채권자가 미술품 경매업에 있어서 선도업체인 만큼 가능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력하여 왔기 때문에 이 사안에서도 시공사 도록 작품을 참고 도면으로 실지 않게 된 것입니다.”

원고는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작품을 도록에 실을 경우, 가나아트센터를 위해 다른 작품도 많은데 일부러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작품을 도록에 싣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근데 그와 같은 판단을 할 경우, 다른 ‘빨래터’를 게재하지 않고 단지 이 사건 작품만 실었을 경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작품의 비교사례로 제106회 서울옥션 경매도록에 실린 3점의 ‘빨래터’와 시공사 도록 작품까지 실어야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공사 도록 작품을 배제한 까닭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채권자가 그동안 “미술품 경매업에 있어서 선도업체인 만큼 가능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력하여 왔”다면 더욱이 시공사 도록 작품을 참고 도판으로 실었어야 한다. 하지만 채권자는 ‘불필요한 오해’ 운운하면서 ‘의도적’으로 시공사 도록 작품 도판을 배제시켰다. 따라서 채권자는 “미술품 경매업에 있어서 선도업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이 사건 기사는 시공사 도록 작품을 알고 있었지만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은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혹을 제기했다.

“비교사례로 그와 유사한 <빨래터> 그림들과 드로잉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공개작 <빨래터>와 가장 비슷한 시공사 <빨래터>를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원고는 위의 의혹제기를 “마치 원고가 이 사건 작품이 위작임을 감추기 위해 시공사 도록 작품을 고의적으로 경매 도록의 참고 작품에 실지 않은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라고 오독했다. 원고는 이 사건 기사를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면서 원고의 신용과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고 오독에 오독을 거듭하면서 이 사건 기사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유족 ‘감정 소견서’ 한 장만 증거물로 제시한다?

“원고는 미술품을 경매에 출품함에 있어 복수의 감정위원들을 통한 안목감정, 출처 감정, 유족 소견 및 자외선 촬영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위탁 작품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여 왔고, 특히 이 사건 작품의 경우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박수근의 미공개 작품이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출품하였습니다(갑제1호증 참조).”

(주)서울옥션은 이 사건 작품에 대해 “복수의 감정위원들을 통한 안목감정, 출처 감정, 유족 소견 및 자외선 촬영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위탁 작품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주)서울옥션이 이 사건 작품(박수근 미공개작 <빨래터>) 진품 증거물로 제출한 것은 유족(박성남)의 ‘감정 소견서’ 한 장뿐이다. 따라서 “복수의 감정위원들을 통한 안목감정, 출처 감정, 자외선 촬영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위탁 작품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는 진술은 허위가 아닌가?

원고는 “특히 이 사건 작품의 경우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박수근의 미공개 작품이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출품하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복수의 감정위원들을 통한 안목감정, 출처 감정, 자외선 촬영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과학적 방법을 모조리 빼고 유족 ‘감정 소견서’ 한 장만 증거물로 제시한 것이란 말인가? 왜?
액자의 흰색, 박수근이 칠했다/소장자 딸이 칠했다?

(주)서울옥션 제106회 특별판 도록에는 미공개작 <빨래터>에 관한 출처와 스토리(Provenance & Story)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이번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 ‘빨래터’는 생전 박수근으로부터 이 작품을 직접 받은 후 약 5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소장자로부터 나왔다. 당시 소장자는 박수근에게 물감과 캔버스 등을 지원했으며, 박수근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작품을 선물했다고 소장자는 전했다. 소장자는 박수근이 이 작품을 전달하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프레임에 흰색을 칠했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 도록에는 박수근 유족인 박성남 씨의 흰색 프레임에 대한 글도 실려 있다. 박성남 씨는 “흰색을 직접 프레임에 칠하시면서 아버지는 바로 본인의 선함과 진실함을 담고자 하셨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언론을 통해 보도된 흰색 프레임에 관한 한미감의 과학감정 결과는 “액자 물감은 원래 액자 위에 덧칠한 것으로 봤다. 액자에 칠해진 색의 변경 정도를 화면 전체의 이물질 부착 상태 등과 함께 고려할 때 상당히 조심스럽게 잘 보관된 작품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한미감의 확대감정 시 박성남 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소장자 존 릭은 “액자의 흰색은 딸이 칠한 것”이라고 이전 진술을 바꿨다. 따라서 소장자 존 릭은 한 입으로 전혀 다른 진술을 한 셈이다. 그런 까닭인지 원고는 소장에서 ‘출처감정’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출처감정의 증거물을 제시하지 ‘않았다’(라기보다 차라리 ‘못했다’는 말이 타당할 것 같다). 더군다나 한미감의 과학감정 결과 - “액자에 칠해진 색의 변경 정도를 화면 전체의 이물질 부착 상태 등과 함께 고려할 때 상당히 조심스럽게 잘 보관된 작품으로 평가” - 는 소장자 존 릭의 두 번째 진술을 따른다면 오판한 셈이다.

감정위원들의 도덕성 문제

“원고는 이 사건 작품의 현 소장자에게 동의를 얻어 이 사건 작품을 주식회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 진위 여부의 감정을 의뢰하였고, 2008. 1. 9. 위 감정연구소는 이 사건 작품이 진품임을 확인하였습니다(갑제4호증의 18내지 26, 갑제5호증 참조).”

원고는 이 사건 작품을 한미감(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 진위 재감정을 지난 2008년 1월 3일 의뢰하였고, 한미감은 지난 1월 4일과 1월 9일 두 차례 비공개감정을 했다. 그러나 원고가 이 사건 작품을 한미감에 위 재감정을 의뢰하기 전인 지난 2007년 12월 31일과 2008년 1월 1일 한미감 소장 및 위원장이 일간지 지면을 통해 ‘진품’이라고 진술했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송향선(가람화랑 사장) 감정위원장은 ‘5월 경매에 나왔을 때도 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걸 여럿 그렸을 수도, 마티에르 기법이 안정화되기 전의 것일 수도 있다’며 ‘어설프다고 가짜인가, 이 작품은 진짜’라고 밝혔다.”(중앙일보 2007년 12월 31일자 권근영 기자의 “45억2000만원짜리 그림이 가짜?”)

“미술품 감정전문가인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를 비롯해 엄중구 샘터화랑 대표,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 등도 비전문가들이 언뜻 보면 색감, 질감 등이 헷갈릴 수 있지만 박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한국경제 1월 1일자 김경갑 기자의 “45억대 박수근 ‘빨래터’ 재감정키로”)

언론에 보도된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는 한미감 감정위원장이고, 엄중구 샘터화랑 대표는 한미감 소장이며,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는 한미감 감정위원이다. 따라서 (주)서울옥션이 이미 ‘진품’이라고 진술한 감정위원이 있는 한미감에 진위 여부 감정을 의뢰한 것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얻을 수 있던 말인가(특히 그들은 모두 이 사건 작품을 재감정했던 감정위원들이다. 따라서 원고가 ‘진품’이라고 주장한 재감정의 결과는 편파감정임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22일자 파이낸셜뉴스에 박현주 기자와 한미감 1차, 2차 감정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최석태 감정위원의 인터뷰가 실렸다. 최위원은 지난 “감정에 참여하지 않았어야 할 인물이 참여한 것도 이해가 안된다. 서울옥션 감정위원장으로 있는 모 위원의 경우 이중섭 위작사건 때도 말이 왔다 갔다 했던 사람이다. 공직에 있을 때조차 상업채널에 감정위원을 해 말썽이 되지 않았는가. 경매 전부터 진품이라고 말했던 미술품감정연구소 감정위원도 배제됐어야 했다. 유족인 박성남씨도 특별감정에 나오지 않았어야 했다. 이중섭 아들 또한 아버지 작품을 제대로 파악 못하지 않았는가.”

앙꼬 없는 찐빵?

YTN 이양희 기자 왈, “미술계는 또 다시 불거진 위작논란에 대해 서울옥션이 의지를 내보인 재검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수근은 문화재 급인 국민화가인 만큼 양쪽과 관계없는 제3의 감정인단을 구성해 과학적 방식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의혹 없는 결론도출로 신뢰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술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이미 공정성을 상실한 한미감에 재감정을 의뢰했다. 한미감은 지난 1월 4일 사건의 작품을 재감정했지만, 당시 재감정은 찬반(진품/위작) 논쟁으로 인해 결과가 유보되었다. 지난 1월 4일 한미감의 사건 작품을 감정했던 “한 감정위원은 ‘찬반이 팽배해 의견이 오락가락했다’며 ‘직접 보니 마티에르와 디테일 등이 진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강하게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분도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직접 보기 전에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딱딱한 질감이 수십년 전에 제작된 것 같다’면서도 ‘반대 의견을 낸 분들의 의견도 설득력이 있어 지금으로선 진위를 얘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한국일보 1월 5일자 박선영 기자의 “위작논란 박수근 ‘빨래터’ 1차 감정”)

결국 한미감의 진위감정 결론유보는 이 사건 잡지의 이 사건 기사가 정당하다는 것을 반증한 셈이다. 이를테면 이 사건 작품의 위작의혹이 정당하다고 말이다. 이미 이 사건 기사의 정당성이 한미감의 진위감정 결론유보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제2차 확대감정을 의뢰했다. 한미감은 지난 1월 9일 제2차 확대감정을 통해 한 명의 감정위원이 반대한 이 사건 작품을 ‘진’이라고 쓴 감정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감정서에는 재감정을 한 감정위원 이름들이 모두 부재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미감의 1월 9일 확대감정에 참석한 감정위원은 총20명이다. 따라서 감정서에는 그 20명의 이름과 그 감정위원들 각 개인들의 감정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감정내용도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서에는 감정위원 이름뿐만 아니라 각 감정위원의 감정내용과 감정결과도 부재한다. 그리고 감정서의 사항 중 하나인 ‘참고사항’도 ‘없음’으로 표기되어 있다(따라서 무엇을 참고로 감정했는지 알 수 없다). 그 감정서에는 단지 (주)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의 ‘진’이라는 단 한 글자의 감정결과만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단편적인 정보는 원고 소장의 주장 - 원고는 이 사건 작품의 현 소장자에게 동의를 얻어 이 사건 작품을 주식회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 진위 여부의 감정을 의뢰하였고, 2008. 1. 9. 위 감정연구소는 이 사건 작품이 진품임을 확인하였습니다. - 이 재감정의 과정을 무시하고 단지 결론만 주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원고의 주장은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닌가?

아구가 맞지 않는 감정

2005년 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에 과학감정으로 결정적인 기여를 한 명지대 최명윤 교수는 지난 1월 9일 한미감의 미공개작 ‘빨래터’ 과학감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중앙일보 1월 14일자 권근영 기자의 “박수근 ‘빨래터’ 제대로 된 과학감정해야”에서 최교수는 “‘빨래터’의 진위 여부를 떠나 과학감정 종사자로서 이번 감정에서 제대로 된 과학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한미감는 밑칠, 균열, 액자, 캔버스 등에 관해 과학감정 결과를 언론 보도자료로 제공했다. 1) 밑칠 : 밑칠로 카키색, 검정색 등을 많이 사용한 것이 박수근 그림의 특징이다. 이 작품에서도 캔버스 가장자리 마티에르가 엷어지는 곳에서 밑칠로 칠해진 카키색을 확인할 수 있다. 2) 균열 : 미공개작 ‘빨래터’ 우측 중간, 중간 하단 등 적지만 몇 군데에서 크랙이 관찰되어 작품제작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교수는 “밑칠이나 균열은 눈으로 확인하는 안목감정 수준”, 즉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로 과학감정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3) 액자 : 흰색 액자에 관한 문제는 이미 위에서 지적했다. 4) 캔버스 : 작품 뒷면의 캔버스를 살펴보면 엷은 황색으로 변색되어 있어 이 점 역시 고온이나 고습이라는 기후변화가 심한 환경이 아니라 매우 잘 조절된 환경 속에서 시간의 경과와 함께 자연스럽게 변색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교수는 고학감정을 위해 그림의 액자 그리고 캔버스의 나무틀을 이용한 탄소연대측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차 범위는 연구소의 주장과 달리 5~10년 이내”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그는 “적외선 분광기를 이용하면 안료를 캔버스에 붙게 하는 기름, 아라비아검 등 유기물 접착 성분의 특성을 파악해 연대 추정의 자료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감정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과학적 방법 그 자체가 진위를 말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과학감정을 평가절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9일 한미감의 확대감정시 기자가 과학감정을 한 곳을 묻지 “카이스트에서 과학감정을 했다”고 한 감정위원은 말했다. 그러나 최석태 감정위원은 파이낸셜뉴스의 인터뷰에서 “카이스트에 분석 의뢰했다는 엑스레이는 찍지도 않았다. 왜 감정연구소는 거짓말을 하냐”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미감의 ‘진품’ 감정결과는 허위사실로 조작된 것이 아닌가?

뉴스메이커 761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최명윤 교수는 “뒤늦게 이 그림의 엑스레이 촬영을 병원에서 했다고 하던데 병원 엑스레이와 문화재를 조사하는 엑스레이는 다르다. 또 그림을 조사하면서 병원에서 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객관성인데 이번 ‘빨래터’ 감정은 그것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미감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진품’ 감정결과는 무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한미감의 감정결과만 가지고 재판부에 피고들 각자에게 30억원보다 “더 강한 손해를 주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할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는 물론 사법적 정의에도 부합하는 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고의 주장은 마치 어느 언론도 앞으로 (주)서울옥션을 상대로 위작의혹 기사를 쓸 수 없도록 엄포를 놓는 것처럼 들린다.

원고는 언론을 통해 이 사건 작품의 위작 의혹 기사를 변변한 근거도 없이 이 사건 기사를 "명예를 훼손한 후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한 것으로 비하했다. 그리고 2008년 1월 2일 원고는 <서울옥션입장>이라는 공식 공문을 통해 피고의 기사를 "비전문가의 주관적인 의견에 근거한 것"으로 비하했다. 또한 2008년 1월 21일 원고는 서울옥션 <고객님께> 보내는 서안에서 피고의 기사를 "근거가 매우 빈약하고 창간 잡지 홍보를 위한 '한탕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하했다. 원고의 비하발언으로 인해 피고의 신용과 명예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피고는 건강한 미술시장을 지향하기 위해 할말은 하는 언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박수근은 ‘국민화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단순한 사적 창작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문화재가 되는 셈이다. 공공적인 차원에서 위작의혹 기사를 다룬 언론에 대해 30억원이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원고의 소장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할 말을 하는 언론’인 아트레이드는 (주)서울옥션의 소송에 맞고소하여 법적 공개감정을 통해 <빨래터>의 진위를 밝히고자 한다.


류병학 주간

by 아트레이드 | 2008/02/15 20:57 | Hot Issu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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